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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한 줄 오해해 미안”… 학폭 처벌 대신 화해 택하는 아이들

입력 | 2026-06-11 04:30:00

학교 갈등 바꾼 ‘관계회복 숙려제’
시범운영한 서울동부교육지원청… 17개월간 교내 갈등 44건 조정
피해-가해 학생 의사 먼저 확인…면담-대화 통해 학교 생활 합의
피해 학생이 원할 땐 처벌하기도




“초등학교 학생들은 사소한 오해에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서로 확인하면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한국회복적정의실천가협회’ 소속 이유정 관계 조정가는 최근 자신이 담당했던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의 갈등 사례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자칫 학교폭력으로 비화될 뻔한 사안이었지만 ‘관계회복 숙려제’를 통해 무난하게 해결됐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처음에는 ‘상대가 먼저 상처 주는 말을 했다’, ‘다가와서 일부러 밀었다’ 등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조정가는 개별 면담 과정에서 ‘왜 일부러 밀었다고 생각했나’, ‘친구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 무슨 느낌인가’, ‘앞으로 비슷한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등을 질문하며 학생들이 상황을 다시 살피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결국 가해 학생들은 대화 과정에서 “일부러 한 줄 알았다. 물어보지 못해 미안했다”며 사과했다. 피해 학생 역시 자신의 언행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했을 수 있다며 반성했다.

최근 일선 교육 현장에서는 대화를 통해 학내 갈등을 해결하는 ‘관계회복 숙려제’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관계회복 숙려제는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사이의 인간관계 회복과 학교생활 적응을 지원하기 위해 운영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 가해-피해 학생이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

교육부는 올해 3월부터 초등학교 1, 2학년을 대상으로 관계회복 숙려제를 전면 도입하고 경미한 학교폭력 사안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학생들의 ‘관계 회복’에 무게를 두려는 것이다. 이미 시범 사업을 통해 효과는 확인됐다. 서울시동부교육지원청의 경우 관계회복 숙려제를 통해 지난해 27건, 올해 1∼5월에는 17건의 갈등을 조정했다.

관계회복 숙려제는 사전 안내, 사전 개별 면담, 본대화 준비 및 진행, 종결 및 사후 관리 등 4단계로 진행된다.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모두 희망할 때 시작하며 피해 학생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모든 단계에서 학생들의 심리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한다.

학생들은 먼저 자신의 상태를 편안하게 말할 수 있도록 비밀 보장이 가능한 공간에서 조정가와 면담한다. 조정가는 사안에 대한 학생의 인식, 갈등 이전과 현재의 관계, 갈등을 겪은 후 심리·정서적 상태, 해결하고 싶은 부분, 현재까지 대처 방식 등을 살핀다.

이후 사전 면담 결과를 바탕으로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이 조정가와 함께 만나고 학생들은 대화를 시작한다.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고 사과하거나 용서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약속 이행문’을 작성해 향후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회복할지 설계한다. 다만 피해 학생이 대화 대신 처벌을 원할 경우 수용해야 한다. 또 프로그램을 통해 합의된 결과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조치를 대신하거나 처벌을 감경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는 없다.

프로그램을 마친 뒤에도 관계 변화, 학교생활 적응 등에 대한 점검이 이어진다. 필요한 경우 상담기관, 의료기관, 지역사회 전문기관 등 외부 기관과 연계해 지원한다.

● 서로 거리 두는 방식의 합의도 가능

관계회복 숙려제의 핵심은 갈등 이후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이 앞으로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할 것인지 합의하는 것이다. 조정가들은 관계 회복이 반드시 예전처럼 친해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 불편해하지 않고 필요할 때는 서로 돕는 정도의 관계를 만드는 것도 회복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학생들은 서로 인사만 하거나 아예 거리를 두는 등 다양한 형태로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

조정가는 학생들에게 사과나 용서를 강제할 수 없다. 그 대신 개별 면담 등을 통해 학생들이 진심으로 이 사안을 받아들이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지 스스로 정리하도록 해결 과정을 돕는다.

실제 고교생 사례에서는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이 교실에서 서로 거리를 두는 방향으로 합의했다. 그 대신 가해 학생은 무엇을 잘못했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말하는 ‘사과하는 연습’을 했다. 피해 학생 역시 ‘안 돼’ ‘하지 마’ ‘아파’ 등 거부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는 연습을 했다.

학생들은 스스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친구와의 다툼으로 조정 절차에 참여한 한 초등학교 학생은 “친구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먼저 물어보지 않고 무작정 친구의 잘못으로 생각했다”며 “앞으로 먼저 대화한 뒤 어려우면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해 갈등을 해결할 것”이라고 했다.

학부모 역시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학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 피해 학생의 부모는 “단순한 처벌보다는 상대 학생이 왜 이런 행동을 했고, 상대 보호자가 사안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듣고 싶어 학폭위 대신 관계회복 숙려제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충분한 대화만으로도 갈등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조정가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은 1시간 이상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관계 회복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학생들이 스스로 잘못을 반성하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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