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베트로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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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천 전 국가정보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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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존심은 돈, 이데올로기와 함께 스파이를 만드는 주요 동기 중 하나다. 조직이 자신을 몰라주거나 무시한다고 느끼며 복수심으로 적국의 스파이가 되기도 한다. 냉전 시기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블라디미르 베트로프가 대표적이다. 명문대 출신 엘리트 스파이였던 그는 미국과 소련 간 긴장 완화 분위기가 조성되던 1965년 산업스파이 임무를 맡고 프랑스에 파견됐다. 당시 과도한 군비 경쟁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서방의 선진 기술이 필요했던 소련은 KGB에 ‘라인 X’라는 전담조직을 만들어 산업스파이를 양성했는데, 베트로프도 그 일원이었다.
그는 호황기 프랑스 파리에서 5년간 외교관 신분으로 스파이 활동을 하며 풍요와 향락을 만끽하고 복귀했다. 그런데 자본주의 생활을 맛본 그가 열악한 모스크바 환경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한 것은 조직 내부의 차별이었다. ‘노멘클라투라’라는 공산당 특정 세력이 진급 등 혜택을 독점하면서 승진에서 계속 탈락했고, 후배가 직속 상사가 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그는 조직에 대한 복수를 결심했다. 1980년 말, 베트로프는 파리 근무 당시 알고 지낸 프랑스 국토감시국(DST) 요원에게 전향 의사를 담은 편지를 보냈다. 암호명 ‘작별(Farewell)’ 공작의 서막이었다.
그가 프랑스와 손잡은 이유는 프랑스 정보기관에는 소련 스파이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서방에 침투한 소련 스파이 명단과 이들이 빼내 간 산업기술 정보 등 수천 건의 기밀자료를 프랑스에 넘겼다. 그중 일부는 미국과 공유됐는데, 미국은 자국의 기술 유출을 역이용하는 공작을 추진했다. KGB 라인 X 요원들에게 허위 정보를 흘려 소련의 우주 개발 계획에 차질을 빚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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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에서 1983년 프랑스가 베트로프로부터 입수한 정보를 활용해 서방에 암약하던 소련 스파이 47명을 추방했다. 이를 계기로 KGB가 역추적을 통해 스파이의 행적을 밝혀내면서 그는 1985년 처형됐다. 이 사례는 국가와 조직에 대한 강한 충성심이 요구되는 정보기관에서 내부 불만이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14년 미국, 러시아와 연계한 3중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독일 연방정보부(BND) 요원 마르쿠스 라이헬도 “미 중앙정보국(CIA)은 나를 인정해 줬다”며 배신 동기로 자존감을 언급했다. 어느 조직이든 다양한 이유로 내부 불만자가 생길 수 있지만, 정보기관만큼은 이를 국가안보 관점에서 신중하게 관리해야 한다. 내부 스파이는 핵폭탄만큼 위력적이다.
정일천 전 국가정보원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