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시 금성관길 ‘나주곰탕하얀집’의 곰탕. 1인분에 1만3000원이다. 김도언 소설가 제공
김도언 소설가
하얀집은 1910년 원판례 할머니가 문을 처음 열었다. 대한제국이 막 저물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던 격변의 시기였다. 이후 며느리 임이순 여사가 1940, 50년대의 혼란기를 견디며 가게를 지켰고, 아들 길한수 명인이 3대를 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4대 계승자인 길형선 대표가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가족이 한자리를 지키며 한 가지 음식을 만들면서 이 집은 세속의 무가치함과 묵묵히 싸워 왔다.
노포의 가치는 단순히 오랜 세월 문을 열고 있다는 데 있지 않다.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문화와 풍속을 만들고 신뢰를 축적한 것에 있다. 전쟁과 가난,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도 하얀집은 한결같이 곰탕을 끓였다. 수많은 식당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동안에도 이 집이 살아남은 이유를 설명하는 데는 복잡한 말이 필요 없다. 역사라는 명분에 앞서 맛이 먼저 식객들을 설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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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형선 대표는 27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친 뒤 2011년 가업을 이어받아 전통의 계승에 힘쓰고 있다. 그 노력은 2015년 전라도 향토음식 대한민국 명인 선정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그러나 진정한 명예는 훈장이나 칭호보다 손님들의 인정 속에 있을 것이다. “나주에 가면 하얀집부터 들러야 한다”는 말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집이 받은 가장 큰 상이다.
요즘 노포라는 말이 흔해진 감이 있다. 온갖 매스컴과 유튜브, 소셜미디어를 통해 숨어 있던 노포들이 쏟아진다. 노포라는 말이 마케팅의 키워드가 된 듯도 싶다. 하지만 세월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영업 전략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루하루 충실하게 쌓은 시간과 온축(蘊蓄)의 총합이다. 나주목사 내아장터에서 시작해 금성관 앞길까지 묵묵히 국물을 끓여온 하얀집의 역사가 바로 그렇다. 지금은 현대적 건물로 반듯해진 이 집에서 한 그릇의 곰탕을 먹는 것은 단순히 한 끼를 때우는 일이 아니다. 원판례 할머니로부터 시작된 116년의 시간과 마주 앉는 일이다. 식객이 뜨는 밥 한 숟가락에 그 의미가 함께 얹힐 때, 먹고사는 일은 비루한 섭생이 아니라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된다.
김도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