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중국 상하이 ‘투석여행’에 동행한 신부전 환자와 의료진이 여행 소감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표 대한신장학회 총무이사, 환우 박모 씨, 신지숙 씨, 전동수 씨, 문혜원 범일연세내과 투석전문 간호사, 이동형 세계여행투석의료네트워크 이사장(대한신장학회 홍보이사). 상하이=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지난달 28일 대한신장학회 소속 전문의와 투석 전문 간호사, 혈액 투석 환자 3명은 중국 상하이로 3박 4일의 특별한 여행을 떠났다. 이번 여정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투석 환자도 철저한 의료적 준비만 뒷받침된다면 얼마든지 해외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낸 국내 첫 사례이자 기념비적인 발걸음이다.
첫날 인천국제공항에 모인 환자들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매주 세 번씩 병원 투석실에 갇혀 지내던 이들이 비행기에 몸을 싣고 상하이 땅을 밟게 된 것이다. 투석 4년 차인 직장인 전동수 씨(42)는 “외국에 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는데, 의료진이 함께 가니 마음이 놓인다. 투석 뒤 첫 여행이라 너무 기대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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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 의료진과 여행사의 노력이 있었다. 전 세계 투석 병원을 연결해 환자들이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조율해준 ‘세계 여행 투석의료 네트워크(WTDM)’와 환자들의 동선 및 안전을 세심하게 배려한 ‘하나투어’의 체계적인 기획이 뒷받침됐다.
투석 환자 여행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은 역시 ‘현지 투석’이다. 일행이 찾은 상하이이다(上海醫大)의원은 2000병상 규모에 1300여 명의 의료진을 보유한 대형 병원이다. 87개의 병상을 갖춘 투석실에 들어가 보니 국내 유수의 병원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 수준 높은 최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현지 의료진은 미리 전달받은 환자 정보와 검사지를 확인한 뒤 한국에서 동행한 대한신장학회 전문의, 전문 간호사와 실시간으로 환자의 상태를 공유하며 침착하게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낯선 타국 땅에서도 안심하고 투석 치료를 받는 환자들을 보며 의료 기술과 네트워크의 발전이 인간의 삶의 질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목격할 수 있었다. 여정에 참여한 환자들은 “해외 병원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국내 최고급 병원 못지않게 편안하고 안전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국내 투석 환자 수는 약 12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 대다수는 여전히 신장 투석이라는 무거운 족쇄에 묶여 일상 너머의 세상을 꿈꾸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여행은 사치”라며 스스로 마음의 벽을 세우고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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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례를 계기로 투석 환자를 위한 맞춤형 해외여행 프로그램이 더 활성화되길 바란다. 이를 위해선 의료계와 여행 업계의 협력이 제도적으로 정착돼야 한다. 12만 투석 환자가 병원과 집을 오가는 반복된 일상에 절망하거나,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을 주저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투석 환자들도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자격이 충분하다. 이번 상하이 여정이 환자들의 가슴속에 ‘나도 할 수 있다’는 따뜻한 꿈과 희망의 씨앗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