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첨단 기능을 결합한 자동차에 결함과 오작동이 발생하면,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급발진 사고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동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고 유형도 천차만별입니다. 전기차 전환을 맞아 새로 도입되는 자동차 관련 법안도 다양합니다. 이에 IT동아는 법무법인 엘앤엘 정경일 대표변호사(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와 함께 자동차 관련 법과 판례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는 [자동차와 法] 기고를 연재합니다.
출처=엔바토엘리먼츠
기술은 점차 운전자의 손과 발을 자유롭게 하며, 운전의 주도권을 가져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사고가 발생하면, 우리의 낡은 법과 제도는 여전히 운전자 개인에게만 모든 책임을 묻습니다. 제조사의 화려한 광고를 믿고 운전대를 자율주행에 맡겼던 운전자들은 사고가 일어나는 그 순간 ‘첨단 기술의 수혜자’에서 ‘책임을 뒤집어쓰는 소비자’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법과 현실의 괴리…“책임은 운전자 몫”
도로 위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관련 추돌 사고의 법적 처리 과정을 들여다보면, 기술을 대하는 현행법의 한계와 제조사의 이중적 태도가 함께 드러납니다. 국내 고속도로에서 주행 보조기능을 켠 채 주행하다가 차선 감소 구간이나 야간 공사 구간을 제때 인식하지 못해 방호벽을 들이받거나, 주정차 차량을 추돌할 경우, 책임은 운전자에게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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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때는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 강조, 사고 나면 ‘보조 장치’ 주장
더욱 씁쓸한 것은 제조사들의 태도입니다. 차량을 판매할 때는 ‘오토파일럿’,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이라는 명칭으로 소비자의 시스템 과신을 유도해 놓고, 막상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매뉴얼 구석에 적힌 면책 조항을 방패로 삼습니다. 그들은 “해당 기능은 주행을 돕는 ‘보조 장치’일 뿐이며, 항상 전방을 주시해야 하는 통제 책임은 운전자에게 있다”고 항변합니다.
결국 기술 맹신을 부추긴 기업은 이익을 챙기고 법망을 빠져나가는 반면, 시스템 오작동으로 사고를 낸 운전자는 형사적 처벌과 막대한 민사적 손해배상 책임을 떠안게 됩니다.
해외 자율주행 사고에 대한 책임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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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근 미국 법정에서는 이 견고한 ‘운전자 100% 과실’ 구조를 무너뜨리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2025년 8월, 미국 마이애미 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은 테슬라 오토파일럿을 켠 채 운전자가 떨어진 휴대전화를 줍느라 전방 주시를 태만히 해 보행자를 숨지게 한 사고에서, 테슬라 측에 33%의 과실 책임을 인정하고 막대한 금액의 배상 평결을 내렸습니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스템이 활성화되도록 방치한 점, 부실한 운전자 시선 감시, 그리고 ‘완전자율주행’을 연상케 하는 과장 마케팅이 운전자의 방심과 과신을 유도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한국도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국내도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닙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과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임시운행 자율주행차 사고통계에 따르면, 국내 자율주행차 사고는 2022년 7건, 2023년 27건, 2024년 31건, 2025년 9월 기준 47건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다행인 점은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따라 자율주행 사고도 일단 차주가 배상한 뒤 원인을 따져 책임자에게 구상하도록 해 두었고, 사고 원인을 규명할 사고조사위원회도 마련해 두었습니다. 국토교통부도 올해 4월 ‘자율주행차 사고책임 TF’를 꾸려 연말까지 책임 가이드라인과 법 개정 과제를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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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이미 운전 주도권의 일부를 가져갔습니다. 그렇다면 법과 제도는 운전의 일부가 어디로 이동했는지에 맞춰 움직여야 합니다. 자율주행시대에 오로지 운전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구조는 이제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
글 / 정경일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
정경일 변호사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제49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수료(제40기)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교통사고·손해배상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IT동아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