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우드스톡 자택서 별세”…홍보담당자 발표 2012년 마지막 공연 뒤 2014년 연주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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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재즈를 대표한 테너 색소폰 거장 소니 롤린스가 95세로 별세했다. 2012년 폐섬유증 진단 뒤 마지막 공연을 한 그는 끝내 공식 은퇴를 선언하지 않은 채 평생 추구한 ‘궁극의 소리’를 남기고 떠났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5일(현지시간) 롤린스가 미국 뉴욕주 우드스톡 자택에서 숨졌다고 보도했다. 사망 사실은 그의 홍보 담당자 테리 힌테가 성명을 통해 발표했다.
롤린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즈를 대표한 테너 색소폰 연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힘 있고 상상력 넘치는 연주, 예측하기 어려운 즉흥성, 장르 하나로 묶기 어려운 음악 세계로 재즈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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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뉴욕 할렘에서 태어난 롤린스는 10대가 끝나기 전 이미 전문 연주자로 활동했다. 1949년 첫 녹음을 한 뒤 마일스 데이비스, 셀로니어스 몽크, 버드 파월 등 뉴욕 재즈계의 주요 음악가들과 함께 연주했다.
초기 경력은 마약 중독으로 잠시 흔들렸다. 그러나 그는 1955년 중독을 극복했고, 드러머 맥스 로치와 트럼펫 연주자 클리퍼드 브라운이 이끈 퀸텟의 일원으로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
1956년은 롤린스의 이름을 재즈사에 새긴 해였다. 그는 그해 ‘테너 매드니스’와 ‘색소폰 콜로서스’를 녹음했다. ‘테너 매드니스’에는 존 콜트레인과의 유일한 녹음이 담겼고, ‘색소폰 콜로서스’는 그의 예술적 체급을 상징하는 대표작이 됐다.
‘색소폰 콜로서스’ 수록곡 ‘블루 7’은 주제 즉흥연주의 대표 사례로 평가받았고, ‘세인트 토머스’는 서인도 제도의 전통 선율을 재즈로 풀어낸 곡으로 널리 사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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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장 강하게 기억되는 장면 중 하나는 갑작스러운 잠적이다. 1959년 롤린스는 호평을 받으며 재즈계의 새 스타로 떠오른 상태였지만, 돌연 연주와 녹음을 중단하고 대중 앞에서 사라졌다.
이유는 자신의 연주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는 연주가 자신의 기준에 못 미친다고 느꼈고, 이후 2년 넘게 연습에 몰두했다. 당시 그는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드 집 근처의 윌리엄스버그 다리 위에서 밤늦게 색소폰을 불곤 했다. 이 일화는 그를 완벽주의자로 기억하게 만든 대표적 장면이 됐다.
1961년 복귀는 재즈계의 큰 뉴스였다. RCA 빅터와 계약한 그는 복귀 앨범 ‘더 브리지’를 내놓았다. 앨범 제목은 그가 공백기 동안 연습했던 다리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롤린스의 음악은 한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아방가르드 음악가 돈 체리와 작업했고, 자신의 우상으로 꼽은 콜먼 호킨스와도 녹음했다. 1966년에는 영국 영화 ‘알피’의 음악을 쓰고 녹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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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들의 평가는 때로 엇갈렸지만, 롤린스는 오랫동안 재즈 공연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연주자 중 한 명으로 남았다. 말년에도 실험은 이어졌다. 1985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는 무반주로 2시간 동안 즉흥연주를 했고, 같은 해 도쿄에서는 오케스트라와 협주곡을 연주했다.
그의 마지막 공개 공연은 2012년이었다. 폐섬유증 진단을 받은 뒤였다. 2년 뒤에는 집에서 색소폰을 부는 일도 멈췄다. 그는 공식 은퇴를 선언하지 않았지만, 건강 문제로 연주는 조용히 끝났다.
그는 그래미상을 두 차례 받았고, 2004년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2011년에는 국가예술훈장과 케네디센터 명예상을 받았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