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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트럼프와 ‘컬러’ 김정은…다른 色에 같은 권력욕[청계천 옆 사진관]

입력 | 2026-05-09 13:00:00

백년사진 No. 163





● 장면 1 — 칼라 시대에 정면 도전하는 트럼프 사진

요즘 신문이나 인터넷으로 뉴스를 볼 때 한 가지가 자꾸 눈에 들어왔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이 유독 흑백이 많다는 점입니다. 컬러 사진이 차고 넘치는 시대에, 백악관이 직접 배포하는 사진에 흑백 사진이 자주 포함됩니다. 흑백 TV을 보며 어린 시절을 보내다 칼라 TV로 세상을 처음 보았을 때의 환희를 기억하는 세대로서 갑자기 정치인 사진이 흑백으로 처리되는 것이 시대가 거꾸로 흘러가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천조국‘ 미국의 대통령이 역사의 퇴행을 의도하지는 않을테니, 흑백 사진이라는 게 멋을 낸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궁금해져서 자료를 좀 찾아봤습니다.

먼저 최근 사례를 날짜순으로 정리해 봅니다.

*2026년 5월 3일 오전 7시 53분 / 백악관 X 계정. 이란이 보내온 협상안을 검토하겠다는 글과 함께, 의자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는 트럼프의 흑백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이미지 하단에는 “The WHITE HOUSE” 워터마크가 박혀 있었습니다(아래 사진)

“I will soon be reviewing the plan that Iran has just sent to us, but can’t imagine that it would be acceptable in that they have not yet paid a big enough price for what they have done to Humanity, and the World, over the last 47 years…” - President Donald J. Trump 7:53 AM · May 3, 2026 / 백악관 X


*2026년 5월 3일 오전 1시 22분 / 백악관 X 계정. 사회보장과 메디케어를 보호하겠다는 글과 함께 주먹을 쥔 트럼프의 흑백 사진.

*2026년 4월 27일 / 영부인실(@FirstLadyOffice) X 계정. 트럼프 부부가 영국 찰스 3세 국왕 부부를 백악관 그린룸에서 맞이하는 장면. 줄무늬 소파, 격자 카펫, 벽에 걸린 풍경화가 모두 그대로 등장하지만 흑백으로 처리되어 있습니다(아래 사진).

President Donald J. Trump and First Lady Melania Trump host King Charles III and Queen Camilla of the U.K. for tea in the Green Room | April 27, 2026./ 백악관 X


*2026년 1월 17일 / 백악관 공식 채널. 집무실 책상에 양 주먹을 짚고 정면을 응시하는 트럼프의 흑백 사진. 이미지 위에는 “The Tariff King(관세 왕)”이라는 문구가 함께 적혔습니다.

*여기에 더해 2025년 6월 2일 백악관이 공개한 트럼프 2기 공식 초상 사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백악관 수석 사진가 다니엘 토록(Daniel Torok)이 촬영한 이 사진은 검은 배경 앞에 트럼프가 자리 잡은 모습으로, 컬러 사진이긴 한데, 검은 배경과 어두운 톤 때문에 거의 흑백처럼 읽힙니다(아래 사진).


성조기는 배지로 대신한 트럼프 2기의 공식 초상. 사진 출처 백악관.

● 외국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나

궁금해서 외국 매체들을 찾아봤더니, 이미 여러 평론가가 같은 지점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뉴욕타임스 미술비평가 제이슨 파라고(Jason Farago)는 트럼프 1기의 미학이 텔레비전에서 왔다면, 2기 이미지는 실리콘밸리에서 왔다고 진단했습니다. 대칭 구도, 흐릿한 디테일, 가장자리의 블러, 얕은 심도 등 AI 생성 이미지의 특징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CNN은 형식 변화에 주목했습니다. 트럼프 2기 공식 초상이 50년 이상 이어진 두 가지 전통 — 웃는 표정과 성조기 배경 — 을 둘 다 버렸고, 어두운 배경에 얼굴 일부가 그림자에 가려진 모습으로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미국 공식 대통령 초상에서 성조기가 배경에서 사라진 것은 1969년 닉슨 이후 처음입니다.

프랑스 사진 전문지 포토트렌드(Phototrend)는 기술적 분석을 더했습니다. 사진가 다니엘 토록은 눈높이 아래에 조명을 두어 어둡고 연극적인 룩을 만들었고, 강한 대비와 짙은 그림자로 “전투적 트럼프”의 이미지를 강화했다는 것입니다. 지지자들에게는 결단력과 강인함으로, 비판자들에게는 권위주의적·위협적 지도자로 읽히는 양면성이 의도되어 있다고 봤습니다.

미국 미술 전문지 아트뉴스(ARTnews)는 색의 선택 자체를 짚었습니다. 2025년 6월 새 공식 초상이 트럼프 소유 부동산 대부분의 색 조합인 검정과 금색을 따르고 있다는 점, 그리고 2년 전 그의 머그샷과 비슷한 인상을 준다는 점입니다.

종합해보면 외국 비평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흐름이 보입니다. 트럼프 백악관의 시각 전략에 분명한 일관성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흑백, 저조도, 강한 그림자, 정면 응시. 우연이 아니라는 거죠.

● 장면 2 — 평양에서는 정반대 풍경이

여기까지 정리하다가 문득 평양 노동신문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북한 노동신문에 실리는 김정일 김정은 사진을 중심으로 북한의 이미지 정치를 20년간 지켜보고 있습니다. 관련 내용을 두 권의 책으로 엮기도 했습니다.

미국 트럼프와 대조적으로 북한 김정은 사진에서는 정반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2013년 7월 26일자 이후 노동신문에서 김정은의 사진은 컬러로만 게재됩니다. 김정은을 제외한 다른 정치인의 사진은 원칙적으로 흑백입니다.

2024년 4월 14일자 북한 노동신문.

평양에서는 한 사람만 컬러를 입습니다. 워싱턴에서는 한 사람만 흑백을 입습니다. 방향은 정반대인데, 작동 원리는 묘하게 같습니다.

색 자체가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누구를 주변과 다른 색깔 스펙트럼에 놓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 권력의 표현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컬러든 흑백이든, 다수와 색을 달리하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지금 그 화면의 주인공입니다.

왜 방향이 반대일까. 두 사회의 시각 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컬러가 희소한 사회입니다. 신문 지면에서 컬러 인쇄는 비용이고 특권입니다. 한국 신문도 전체 지면이 칼라가 아니고 일부 지면은 흑백입니다. 그건 인쇄 비용을 고려한 ’가성비‘ 때문입니다. 북한의 경우 만성적인 자원 부족에 시달리는 만큼 신문에는 최소한의 달러를 사용하고 다른 군사 목적이나 건물 건설 등에 집중해야 하는 만큼 신문에서 흑백면은 ’디폴트‘ 값입니다.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그나마 칼라와 흑백이 2대 8 정도 되지만 평양신문이나 문학신문 등에서는 칼라 사진을 찾기가 그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이 등장하는 지면에는 칼라 지면이 배치됩니다. 이런 욕망과 기준은 김일성 시대부터 김정일에 의해 주장되었지만 김정일이 사망할 때까지도 철저하게 지켜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만큼 경제 상황은 계속 어려웠던 것이죠.

그러다 김정은이 정권을 잡은 후 이제는 완전한 원칙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최소한 노동신문에서는 그렇습니다. 다른 신문들에서는 아직 김정은도 흑백으로 프린트됩니다. 대신 다른 지면보다는 좀 더 좋은 종이를 사용하는 특혜를 제공합니다. 그래서 컬러를 김정은에게 독점시키면 자연스럽게 위계가 생깁니다.

반면 미국은 컬러가 포화 상태인 사회입니다. 인스타그램, 틱톡, 백악관 공식 SNS, 모든 매체가 컬러로 넘칩니다. 이런 환경에서 컬러로 자기를 부각시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트럼프 진영은 흑백을 희소재로 전환시켰습니다. 컬러가 흔한 사회에서는 흑백이 위계의 기호가 됩니다.

같은 원리, 정반대 적용입니다.

● 장면 3 —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시선을 한국으로 돌려봅니다. 우리 신문과 SNS 피드 속 정치인들은 어떤 색감으로 우리에게 도착하고 있을까요. 청와대가 직접 배포하는 사진과 현장에서 기자들에 의해 찍힌 사진의 색감은 어떻게 다른지. 야당 정치인은 어떤 톤으로 실리는지.

매일 수백 장의 이미지를 스쳐 지나가는 시대에, 잠깐 멈춰서 색을 들여다볼 가치가 있는 장면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지난 1월 백년사진에서 저는 트럼프의 흑백 포스터 한 장을 두고 “설명을 얻기 위해 찍힌 사진이 아니라 확산되기 위해 설계된 이미지”라고 적었습니다. 넉 달이 지난 지금, 그 흐름은 더 또렷해졌고 외국에서도 비슷한 분석이 더 많이 나왔습니다.

색은 정보가 아닙니다. 색은 서열이었습니다. 누구를 더 선명하게, 더 생생하게, 더 현재적인 존재로 보이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권력입니다. 이 원리는 평양에서도 워싱턴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최근 어떤 정치인 사진의 색감이 마음에 남으셨나요. 좋은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나눠주세요. 백년사진이었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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