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가정의 달 ‘장손’을 권한다
3대가 모인 제삿날, 가업 두부공장 운영 문제로 가족들이 다투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오정민 감독의 영화 ‘장손’(2024년 개봉). 핏줄과 밥줄로 얽힌 3대 저마다의 사정을 보면 각자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가부장제 속에서 가족 구성원은 모두가 상처를 안고 산다. 인디스토리 제공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고장답게, 그곳에는 가부장제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제사 때가 되면 남자들은 예식을 주도하는 반면, 여자들은 음식 장만에 몰두한다. 그뿐이랴. 이 집안 대를 이을 장손에게 온 가족의 관심이 쏠려 있다. 그가 언제 고향에 내려오는지, 사회적으로 성공하는지, 아이를 낳아줄 신붓감을 데려오는지. 이런 대상을 소재로 해서 영화를 만들기는 크게 어렵지 않다. 진보적 시각에서 구태를 박살 내버리거나, 보수적 시각에서 전통을 선양하거나. 그도 아니면 갈등을 보여주고 그 갈등을 봉합하는 과정에서 감동의 눈물바다를 만들어버리거나. ‘장손’은 그 어느 길로도 가지 않기에 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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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정의 살림을 지휘하던 할머니 말녀가 죽자 집안은 본격적으로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평생 한글조차 배울 기회가 없었다는 점에서 말녀는 가부장제의 전형적인 피해자다. 동시에 가부장제를 뒷받침해 온 존재이기도 하다. 손자에 대한 사랑은 손녀에 대한 사랑을 압도한다. 손녀가 있을 때는 틀지 않던 에어컨을 장손이 오면 서슴없이 틀 정도다. 죽기 얼마 전에야 간신히 깨친 한글로 직접 쓴 가정요리법을 손녀에게 선물로 준다. 그처럼 말녀의 사랑은 전통적인 성 역할을 벗어나지 않는다. 벗어났다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아버지 태근은 아들이라는 이유로 누나는 감히 꿈꾸지 못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그는 가부장제의 대표적 수혜자다. 누나는 태근이 누린 기회를 선망하지만, 정작 대학생이 된 태근은 학생운동을 하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몸이 비틀거리는데, 그에 못지않게 마음도 비틀거린다. 술에 취한 태근은 소리친다. “그래서 내가 하라는 대로 다 했잖아요. 내가 안 한 게 뭐 있는데! 법대 가라고 해서 갔고, 두부공장 하라고 해서 했고!” 아들이라서 받은 수혜 때문에 태근은 가족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고, 그 결과 그는 자기 인생을 사는 데 실패했다.
큰고모 혜숙은 가장 불행해 보이는 인물이다. 혜숙의 남편은 불의의 사고로 의식을 잃고 오랫동안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런 상황에서 혜숙은 어떻게 살아왔나. 남편의 병원비를 벌고 자신의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친정으로 돌아와 가사일을 도왔다. 그 가사노동은 충분히 보상받았을까. 혹시 친정은 그녀를 품는다는 명분 아래 그녀의 노동을 착취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말녀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재산 다툼이 벌어진다. 혜숙은 말녀에게 꾸준히 자기 몫의 돈을 맡겨 왔다고 주장한다. 태근이 술김에 혜숙의 거처에 불을 지를 정도로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정말 혜숙은 자기 몫의 돈이 있었던 것일까. 그랬다면 그 돈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혜숙에 비해 돈을 잘 버는 남편을 만난 여동생은 그나마 자기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남편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김에 따라 여동생은 이제 곧 베트남으로 이주한다. 가족으로부터 멀어진 그녀는 타국에서 과연 행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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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을 보며 장손이 머뭇머뭇하는 동안, 노망 난 승필은 집으로 돌아오는 대신 산으로 사라진다. 마치 전통은 자기 힘으로 귀가하지 못한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승필은 자력으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길을 잃고 산으로 올라가는 승필의 모습을 카메라는 롱테이크로 오래오래 집요하게 바라보며 영화는 끝난다. 그러한 응시에 이 영화의 핵심이 있다. 가부장제를 타파하는 진보적 영웅이나 가문을 구제하는 보수적 영웅을 주인공으로 삼아 선동하지 않는다. 손쉽게 선악을 나누고 어느 한쪽이 승리했다고 선언하지 않는다. 그 대신 가족 구성원들 모두에게 상처가 있으며, 각자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라는 사실을 집요하게 응시한다. 그러한 응시 속에서 관객은 역사의 전체성과 삶의 복잡성을 감각하게 된다. ‘장손’은 섬세한 역사 쓰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