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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DMZ-민간인 학살… 시로 불러낸 현대사

입력 | 2026-05-02 01:40:00

◇DMZ 콜로니/최돈미 지음·정은귀 옮김/164쪽·1만8000원·문학사상




책장을 펼치면 ‘시집’을 기대했던 독자는 당황스러운 느낌을 받게 된다. 첫 장엔 ‘한 나라의 허리’라는 제목 아래 점선으로 그려진 휴전선이 ‘비무장지대’에 대한 설명과 함께 등장한다. 다음 장엔 “…멀리서 온 향수병 걸린 참새가 안쓰러웠는지, 눈기러기들은 하늘에서 내게 작은 선을 하나 떨구어 주었다”는 글귀가, 다음 장엔 기러기들의 모습이 점선처럼 표현된 이미지가 나온다. 뒤에도 구타와 고문 등 비전향 장기수가 당한 폭력에 대한 인터뷰, 6·25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 이야기 등 ‘시 같지 않은’ 것이 더 많다.

하지만 이런 텍스트와 여러 사진, 드로잉, 수기(手記) 등의 이미지를 교차시키면서 책은 고통을 비롯한 우리 현대사 속의 감각을 독자에게 충실히 전해준다. 그런 점에선 웬만한 전형적인 시집보다 낫다 싶다.

저자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 1.5세대 시인으로, 이 책으로 2020년 미국에서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김혜순 시인의 번역가로도 이름이 알려진 작가는 “하늘을 봐도 새를 봐도 번역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시인은 자신의 작업을 “지정학적 시학”으로 정의한다고 한다. 지난날 저항운동 세력이 한국 사회를 인식하는 키워드였던 ‘신식민지’를 품은 시집이 오늘날 미국에서 상을 받고 한국어로 다시 번역되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주변부 문학을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라는데, 한국에 사는 독자 입장에선 오히려 바다를 건너며 시간대가 좀 ‘미끄러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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