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 이어 英국왕 두번째 美의회 연설 “전쟁-테러 맞서 어깨 나란히 해와”… 나토의 중요성 트럼프에 환기시켜 “영어 빼고 모든것 공유” 영국 유머도… 백악관, 환영사진에 ‘두명의 왕’ 문구
나란히 백악관 걷는 트럼프-찰스3세 부부 28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남쪽 잔디광장에서 열린 국빈 환영식에서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찰스 3세 영국 국왕, 커밀라 왕비(왼쪽부터)가 나란히 걷고 있다. 찰스 3세 국왕은 이곳에서 치러진 환영 만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윈저 성을 다녀간 후 백악관 이스트윙이 조금 조정된 것 같다. 혹시 윈저 성이 부러웠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농담을 던졌다. 워싱턴=AP 뉴시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28일 워싱턴 연방의회에서 상·하원 의원들을 앞에 두고 28분간 연설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절제된 방식으로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될 만한 견제구를 잇달아 던져 눈길을 끌었다.
특히 행정권을 ‘견제의 대상’으로 표현한 건 행정명령을 남용하며 의회 권한까지 무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동시에 지켜보는 미 의원들을 향해 입법부의 더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트럼프의 권위주의 성향을 겨냥한 일종의 견제”라며 “민주당 의원들이 특히 힘차게 박수로 화답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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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찰스 국왕은 1991년 모친인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이어 영국 왕실 인사로선 두 번째로 미 의회에서 연설했다. 특히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올해가 9·11테러 25주년임을 상기시킨 그는 나토가 9·11테러 직후 집단방위를 규정한 나토 헌장 제5조를 처음 발동했다고 강조했다.
찰스 국왕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테러에 맞서 단결했을 때 우리는 그 부름에 함께 응답했다”며 “두 차례의 세계대전, 냉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공동 안보를 규정해 온 순간들에도 우린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했다. 이어 “우크라이나와 그 용감한 국민을 지키기 위한 흔들림 없는 결의”까지 언급하며 “나토의 핵심은 미군과 동맹국의 헌신과 전문성”이라고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후 꾸준히 나토에 대한 불만을 표출해 왔다. 특히 최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 국면에선 “우리가 필요로 할 때 곁에 없었다”며 나토 탈퇴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그런 만큼 찰스 국왕의 이날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읽힌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방위동맹의 관계를 재평가하겠다고 위협해 온 시점에 찰스 국왕은 나토의 집단방위 조항이 9·11테러 후 미국에 의해 발동된 사실을 상기시켰다”고 했다.
찰스 국왕은 북미와 유럽 국가 간 협력 체제를 뜻하는 대서양 동맹이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과 그린란드 영토 야욕으로 흔들린 대서양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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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백악관이 찰스 3세 영국 국왕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부터)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을 X에 공개하며 ‘두 명의 왕(TWO KINGS)’이란 문구를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을 반대하는 ‘노 킹스(No Kings·왕은 없다)’ 시위를 조롱한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백악관 X 캡처
그는 또 “(미국의 독립을 방해하려는) 교묘한 후방 공격 작전을 위해 (미국에) 온 건 아니다. 안심하라”는 유머로 또 한 번 큰 웃음을 이끌어 냈다.
가디언은 이날 연설에 대해 “예상대로 ‘이란’이란 단어는 국왕의 입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며 “정교한 연설문과 인용문 덕에 국왕은 트루스소셜에서 (트럼프의) 분노를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찰스 국왕의 국빈 환영식에서 “우리가 독립을 쟁취한 뒤 수 세기 동안 미국인들에게 영국인보다 더 가까운 친구는 없었다”며 양국의 유대 관계에 방점을 찍은 환영사를 발표했다. 특히 그는 자신의 모친이 젊은 시절의 찰스 3세 국왕이 TV에 나오자 “너무 멋지다(So cute)”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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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