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날’ 공원서 자연 만끽하는 뉴요커들 콘크리트 숲 안 ‘초록 도시’ 맨해튼… 서울 10분의 1 크기에 300개 공원 뉴욕 시민 하나로 묶는 뉴욕 공원… “공원은 도시의 해독제” ‘좋은 공원 만들기’ 자원봉사도 활발… 다양한 이벤트로 도시 매력 상승
26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센트럴 파크의 ‘시프 메도’ 잔디밭에서 봄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 센트럴 파크는 ‘공원은 다양한 계층과 인종이 어우러지는 장이어야 한다’는 철학 아래 조성됐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 “공원은 사회 융합 공간”
흔히 뉴욕을 상징하는 공원으로 ‘센트럴 파크’만 떠올리기 쉽지만 맨해튼에는 무려 300여 개의 공원이 있다. 뉴욕시 공원국 통계에 따르면 맨해튼 거주자의 99%는 집에서 도보 10분 이내에 공원에 닿을 수 있다. 전 세계 대도시 가운데 최상위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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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뉴욕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 슬럼화로 몸살을 앓고 있었고,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개인 정원을 가질 수 없었다. 당시 뉴욕의 리더들은 이러한 도시 빈민들이 자연 속에서 교류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자 마지막 공간을 공원이라고 봤던 것이다.
이에 가로 0.8km, 세로 4km 크기의 압도적 규모의 공공 공원인 센트럴 파크가 기획됐다. 공원의 길은 일부러 수없이 많은 오솔길이 굽이치는 형태로 설계해 사람들이 천천히 걸으면서 다양한 사람과 우연한 만남을 갖도록 유도했다.
실제 지금도 뉴욕의 공원은 공원 근처 수백억, 수천억 원짜리 고급 주택에 사는 부호들부터 세계 각지의 관광객, 가난한 예술가, 노숙인까지 누구나 섞이는 공간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자본주의의 도시지만, 공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이다.
● 자투리땅, 폐선로까지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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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고가 철도를 ‘공중’의 공원으로 만든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하이라인’에서 꽃과 나무를 심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많은 뉴욕 시민들이 더 좋은 공원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자원봉사에 나선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대표적인 게 1960년대에 전 세계에서 뉴욕시가 가장 먼저 시작해 오늘날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포켓 파크’다. 주머니에 들어갈 만큼 작은 공원이란 뜻의 ‘포켓 파크’는 뉴욕 땅값이 급등하고 공원을 위한 부지를 확보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때에 제안된 혁신 사업이었다.
이를 통해 뉴욕은 도심 곳곳의 방치된 자투리땅이나 공터 쓰레기장 등을 알뜰하게 개발해 165∼660m²(약 50∼200평) 규모의 미니 공원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맨해튼에는 ‘걷다 보면 5분마다 공원이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채로운 공원이 곳곳에 들어섰다.
포켓 파크는 보통 양옆과 뒷면이 높은 건물로 둘러싸여 아늑한 느낌을 준다. 공원이라기보다는 누군가의 집 뒤뜰에 있는 듯한 기분이다. 인공 폭포와 분수 등의 물소리도 흘러나온다. 도시 소음을 차단하고 자연의 느낌을 더해 준다.
포켓 파크는 점심시간마다 샌드위치나 샐러드를 들고나온 뉴욕 직장인들로 붐빈다. 오전과 오후에는 홀로 독서를 하거나 친구와 만나 대화하는 시민들, 강아지를 산책시키다 잠시 쉬어가는 노인과 젊은이도 많다. 말 그대로 ‘도심 속 오아시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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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들이 가꾸는 ‘동네의 거실’
뉴욕의 공원이 다른 지역의 공원과 차별화되는 점은 이런 물리적 조성뿐 아니라 공원의 운영 노하우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공원을 만드는 것은 일회성 노력으로 가능하지만, 이곳에 시민들이 모이고, 융화되며, 계속해서 풍성한 커뮤니티의 중심이 되게 하는 데는 그보다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건 좋은 공원을 만들어 가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는 시민들이다. 많은 뉴요커들이 더 나은 동네 공원 운영을 위한 정책 제언을 하고 기부 또는 꾸준한 자원봉사를 통해 관리에 직접 참여한다.
하이라인 또한 지역 주민에 의해 탄생했다. 당시 철도 철거 계획을 설명하는 공청회에서 만난 조슈아 데이비드와 로버트 해먼드라는 두 시민은 의기투합해 ‘하이라인의 친구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이들이 수년에 걸쳐 당국을 설득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한 덕에 하이라인은 철길 사이로 꽃과 풀이 자라나는 공원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지금도 하이라인에서는 잡초를 뽑는 일 하나까지도 직원들과 지역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한다.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은 포켓 파크에서도 활발하다. 맨해튼 놀리타의 포켓 파크 ‘엘리자베스 가든’은 오랫동안 지역 주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 온 커뮤니티 공원이다. 맨해튼은 살인적 땅값에 주택들이 몹시 협소해 많은 시민들이 이런 동네의 포켓 파크에서 친구를 만나거나 책을 읽으며 여가를 보낸다.
이런 공원들이 최근 뉴욕시의 주택 부족 문제와 맞물려 노인용 저소득층 주택 건설 부지로 거론되면서 주민들이 들고일어났다. 지역 젊은이들은 공원 앞에 데스크를 설치하고 교대로 돌아가며 앉아 공원 보존을 위한 서명을 받는가 하면 티셔츠 등을 제작해 판매하는 등 공론화에 나섰다.
뉴요커들 특유의 창의성을 발휘해 사계절 내내 공원을 끊임없는 이벤트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뉴욕 공공도서관 바로 뒤, 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이용객이 가장 많은 공원으로 꼽히는 브라이언트 파크 잔디밭은 여름에는 무료 요가 교실과 야외 영화제가 열리고, 겨울에는 무료 아이스링크로 변신해 크리스마스 마켓이 들어선다.
센트럴 파크에서는 봄에는 벚꽃 축제, 여름에는 야외 음악 공연과 콘서트, 가을에는 마라톤, 겨울에는 아이스링크 운영 등이 이어진다. 뉴욕의 공원은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뉴욕이 사시사철 매력적인 도시로 꼽히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임우선 뉴욕 특파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