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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AI 시대, 인간 고유 역량 키워주는 철학[강용수의 철학이 필요할 때]

입력 | 2026-04-27 23:06:00

인공지능(AI) 기업에 포진한 철학자들. 앨릭스 카프 팔란티어 최고경영자(CEO)는 독일 괴테대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일보DB


《‘쓸모없는 학문’ 철학의 쓸모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모든 활동 영역을 잠식하고 있는 위기의 시대에 철학이 다시 주목받는 현상은 역설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다고 하면 “취업도 잘 안 되는데 왜 굳이”라면서 말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른바 ‘명문 대학’이라면 철학 전공자는 두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철학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학교 간판을 따려는 사람. 그럼에도 철학의 매력에 흠뻑 빠진 사람 가운데 본업은 의사지만 칸트의 원서를 강독하고, 법조인이라는 직업을 버리고 철학 연구자로 인생을 바꾼 경우도 분명 있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최근 자신의 직업이 AI로 대체될 수 있는지 불안해하는 사람이 많다. 그동안 돈과 명예를 보장한다고 여겼던 ‘사’ 자 직업이 여러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과 출신이 할 수 있는 최고 직업으로 꼽던 변호사뿐만 아니라 회계사, 세무사의 경우 단순 업무는 이미 AI로 대체되고 있다. 의사가 해왔던 업무의 특정 부분 역시 AI나 로봇이 할 수 있다.

철학은 어떠한가. 그간 성공과 명예, 돈과는 거리가 있는 무풍지대였다. 전국 대학의 절반 정도는 철학과 졸업생의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폐과 조치했다. 대학에 철학과가 남아 있다 하더라도 철학 교육이라는 인문학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곳이 많다. 무엇보다 철학과가 로스쿨을 가기에 유리한 전공으로 인식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학비 1억5000만 원을 들여 로스쿨을 다닌 뒤 변호사가 됐는데도 중위 연봉이 3000만 원 수준이라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철학이 AI로 대체될 수 없는 분야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사시사철 매력과 흥미가 넘치는 분야는 아니다. 다만 AI를 더 잘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융합적 사고에 철학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만큼은 크게 부각되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업에 포진한 철학자들. 앤스로픽 상주 철학자(resident philosopher) 어맨다 애스켈이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답하는 모습. 사진 출처 유튜브

최근 잭 클라크 앤스로픽 공동창업자는 AI 시대에 인문학적 소양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면서 철학 전공자의 미래가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신에 따르면 클라크 창업자는 ‘월드 이코노미 서밋’에 참석해 “앞으로는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종합적이고 분석적으로 사고하게 하는 전공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라며 “무엇이 흥미로운지 판단할 수 있는 직관이 핵심 역량”이라고 말했다. 또 앤스로픽이 철학 전공자들을 채용한 점을 거론하며 “철학 학위가 좋은 일자리로 이어진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들은 것이 언제냐. 이제는 그런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기업에 포진한 철학자들. 구글 딥마인드의 ‘철학자 채용’ 소식이 X에 공유되자, 헨리 셰블린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그게 바로 나”라고 직접 반응해 화제를 모았다. 사진 출처 X

앨릭스 카프 팔란티어 창업자가 독일에서 수학한 철학 박사라는 사실이나 최근 구글 딥마인드가 헨리 셰블린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철학자’라는 직함으로 채용한 소식 역시 전혀 놀랍지 않다. 한국에서도 광주과학기술원(GIST)이 이례적으로 하버드대 출신 철학자 2명을 교수로 임용한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국내 대학 입시에서도 철학과의 경쟁률이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철학과를 간다고 해서 세계 최고의 기업에 자동적으로 채용되는 것은 아니므로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철학과에서 ‘AI 윤리학’과 같은 최신 거대 담론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며, 챗GPT와 같은 AI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해서 분석철학적 방법만을 가르칠 이유도 없다.

취업이라는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철학을 통해 질문하는 법을 배워 나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어떻게 질문을 할 수 있는가.

저서 ‘존재와 시간’으로 유명한 하이데거는 이 세계에서 인간만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존재(현존재·Dasein)라고 말한다. 그는 ‘존재(Sein)’와 ‘존재자(Seiende)’를 구분하는데, 그동안 인간은 존재를 망각했기 때문에 ‘존재 물음(Seinsfrage)’을 제대로 제기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당연히 질문이 없었기 때문에 대답을 듣지 못했다. 여기서 인간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은 이미 이해하고 있는 것, 즉 선파악(Vorgriff)을 전제로 한다. 미리 알고 있는 것이 없다면 그 어떤 질문도 던질 수 없다. 우리는 직관과 예감을 통해 어렴풋이 뭔가를 알고 있으며, 그것이 수많은 질문을 통해 명료하게 된다.

따라서 철학과에서 배워야 할 것은 AI 윤리나 언어분석과 같은 고도의 전문적인 내용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늘 물어왔던 것을 더 집요하게 끝까지 묻는 기술이다. 이해란 백지상태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주제를 질문을 통해 더 명료하게 하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다. 해석학은 이와 같은 질문과 대답을 통한 이해를 다루는 철학의 분야다.

많은 전문직이 AI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가운데 철학이 살아남는다고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일자리로만 보면 극소수 천재급 인재만이 과학기술에 필요한 철학자로 영입되는 게 현실이다. AI 연구와 교육에 철학의 인문학적 통찰이 연결되기 위해서는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스스로를 이해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AI 시대에 철학이 재조명되는 역설을 통해 쓸모없음의 쓸모라는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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