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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상대방의 ‘이름’을 부를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상급자에게는 ‘부장’, ‘차장’ 같은 직급에 ‘님’자만 붙여서, 하급자에겐 ‘이 대리’, ‘김 과장’처럼 직급 앞에 성만 붙여 부르는 게 일상적이었다. 물론 ‘야’, ‘너’ 같은 한 글자만 입에 달고 사는 상관도 더러 있었다. 2000년대 들어 수직적이고 경직된 문화를 바꾸려면 이런 호칭부터 손을 대야 한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스타트업들은 물론 일부 대기업에서도 ‘OO 님’, ‘OO 프로’처럼 모든 임직원이 직책과 직급을 빼고 서로 이름만 부르는 곳들이 많아졌다.
▷물론 이런 사회적 변화를 전혀 체감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은데,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다. 누가 누군지 잘 구별하지 못해서, 이름을 기억하거나 발음하기 어려워서, 사고 위험 요소가 즐비한 현장에서 이름을 부를 여유가 없어서…. 이유는 다양한데 다 핑계일 뿐이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어이, 베트남’, ‘야, 미얀마’ 같은 방식으로 불리는 일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에어건 상해’나 ‘지게차 결박’ 사건 같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들이 그 일터와 동료, 그리고 한국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나.
▷한국은 이미 다민족 국가다. 국내에 상주하는 외국인, 귀화자, 다문화가정 자녀 등을 합한 ‘이주배경인구’는 2024년 272만 명으로 집계됐다. 인구 20명 중 1명은 해외에서 왔거나 부모 중 한 명이 외국인이라는 뜻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주배경인구가 총인구의 5% 이상이면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하는데, 한국도 그 기준점을 넘어선 것이다. 하드웨어가 바뀐 만큼 그 안에 들어갈 소프트웨어도 바꿀 필요가 있는데, 아직은 걸음이 더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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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만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이 하기 힘든 ‘험한 일’을 맡는 대체 일꾼이 아니라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소중한 구성원이다.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는 대한민국의 국격을 얘기할 ‘스피커’가 되기도 한다. 이를 떠나 이름을 가진 이들에게 그 이름을 불러주는 건 당연한 것이지 베푸는 게 아니다. 또 성숙한 사회로 가는 시작이어야지 끝이 돼선 안 된다.
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