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직원이 된 엄마 아빠… 우린 서로 짐이 아닌 힘이 됐다

입력 | 2026-04-10 04:30:00

에세이 ‘…부모님을 고용했습니다’
딸 최윤선씨, 선술집 이야기 풀어
“두 분 지켜보며 매일매일 더 부자”



8일 가게 문 앞에 모인 ‘또또’ 가족들. 왼쪽부터 어머니 김민자 씨와 딸 최윤선 씨, 아버지 최철균 씨. 이 가게 복지는 어떨까. “부모님은 저의 동료이자 직원이니 복지를 최우선으로 해야 가게가 행복할 수 있어요. 병원비 지원도 해드리고 김치 담그면 보너스도 나가죠. 철균 님보단 민자 님 월급이 더 높은데, 이건 철균 님도 합의한 계약 내용입니다, 하하.”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변. 카센터와 종합설비 상가가 오밀조밀 모인 길 끄트머리에 2022년 12월, 15평짜리 선술집이 문을 열었다. 황혼의 부모와 막내딸이 운영하는 ‘연희동 핫플’로 소소하게 입소문이 난 ‘또또’다.

8일 가게에 들어서자 카키색 비니를 멋스럽게 쓴 어르신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12개 식탁의 홀서빙과 재료 구입을 담당하는 아버지 최철균 씨(74). 주방에서 재료를 손질하던 어머니 김민자 씨(68)도 나와 인사를 건넸다. 손님도 덩달아 예의를 갖추게 되는 가게였다.

이곳은 노부부의 둘째 딸이자 막내인 최윤선 씨(36)가 대표로, 부모를 고용한 가족 식당이다. 가게에선 ‘철균 님’, ‘민자 님’으로 호칭한다. 두 사람은 경기 평택에서 포장마차, 실내포차, 백반집 등 평생 외식업을 했다. 하지만 팬데믹 직격탄을 맞고 어머니 암 수술까지 겹치며 폐업 절차를 밟았다.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던 최 씨는 부모를 서울로 모셔와 십수 년 만에 함께 살며 장사를 시작했다. 곡절 끝에 먹고살 정도가 됐고, 5년 차를 맞은 올해 그간의 일을 담은 에세이 ‘내 가게에 부모님을 고용했습니다’(파이퍼프레스)도 펴냈다.

어떻게 하던 일을 관두고 ‘가녀장(家女長·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딸)’으로 나설 결심을 했을까.

“감히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감정을 다 느꼈다고 할까요. 엄마가 아프면 슬프고, 돈이 없으면 힘들고. 그런 감정을 두 바퀴쯤 돌았다 싶으니까, 다시 반복할 자신이 없었어요.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완전히 뒤집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돈이 있었던 적이 없으니 돈을 벌어 보고, 급진적으로 가족도 먹여 살려 보면 처음 느끼는 감정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었어요.”

말하자면 인생에 없던 도약을 꿈꾼 셈인데, 그 와중에 부모의 손을 잡았다. 최 씨는 “요즘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지 않느냐”며 “키오스크 앞에 서면 저도 떨리는데 어르신들은 얼마나 위축될까. 멋진 사람들이 시대 변화 때문에 소외되는 모습이 용납이 안 됐다”고 했다.

효녀라는 주변 평가에는 최 씨는 고개를 저었다. 부모의 ‘달란트’에 확신이 있어서 시작한 일이었단다.

“냉정하게 저보다 부모님의 능력이 훨씬 높아요. 나보다 엄마 아빠가 훨씬 멋있는데, 그 ‘무엇’으로 같이 먹고살아 보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술집에서 ‘38년 차 조리실장’인 민자 님은 잔칫상처럼 푸진 음식을 내놓고, 철균 님은 접객을 맡는다. 치즈감자전을 8등분으로 정갈하게 잘라내는 일도 그의 몫이다. 젊은 세대로 북적이는 선술집에서 남다르게 움직이는 철균 님은 손님들의 소셜미디어에 게재되며 또또의 마스코트가 됐다. 철균 님은 월급의 80%만 받는 3개월 인턴 기간을 거쳐 정직원이 됐다고. 손님에게 반말이나 철 지난 농담을 삼가도록 교육도 받았다. 오랜 장사 경력이 있지만, ‘고용된’ 가게 기준에 맞춰 자신을 낮추고 다시 배웠다.

상경 초기, 철균 님이 중고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할 때 있었던 일이다. 서울 지리를 잘 몰라 한동안 딸이 뒤에 타고 ‘부녀 배달 팀’으로 활동했다. 한번은 신축 대단지 아파트로 배달하다가 실수해 음식과 배달 비용을 모두 부담했다. 부녀는 아직 따뜻한 족발을 벤치에 앉아 먹으며 “서울은 족발도 맛있네”, “덕분에 외식하네”라며 웃었다고 한다.

가족도 멀어지면 남보다 못한 세상. 또또네는 부모와 자녀가 ‘동료 가족’으로 살아가는 하나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많이 갖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힌트까지도.

“두 분 여생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 사업은 저에게 커다란 의미가 되고 있어요. 저는 매일매일 더 부자가 되고 있더라고요.”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