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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얼거림의 정체[서광원의 자연과 삶]〈121〉

입력 | 2026-04-07 23:06:00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우연히 들은 노래 한 소절을 계속 흥얼거릴 때가 있다. 오랫동안 잊고 지낸 노래일 수도 있지만, 처음 듣는 노래인데 귀에 딱 꽂히는 한두 소절이 맴돌기도 한다. 가사를 모르니 멜로디만 흥얼거리게 된다. 뭐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호기심이 생겨 자료를 찾아보니 나름 이유가 있었다. 한두 사람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이 공통적으로 겪는 일이니 이유가 없을 리 없다. 놀랍게도, 이 단순한 ‘흥얼거림’ 속에는 인류가 지금처럼 번성하게 된 비결이 담겨 있다.

다양한 연구에 따르면 음악을 듣는다는 건 단순히 귀로 소리를 듣기만 하는 행위가 아니다. 겉보기에는 그저 음악을 수동적으로 듣는 것처럼 보이지만, 뇌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진다. 몸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여러 영역이 함께 활성화되며 바삐 움직인다. 예를 들어 방탄소년단(BTS)이 최근 발표한 ‘SWIM’을 듣고 있으면 청각 영역은 물론 성대와 혀를 관장하는 영역, 리듬을 조율하는 소뇌까지 동시에 가동된다. 실제로 노래를 직접 부를 때와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는 신경과학에서 ‘청각-운동 루프(loop)’라고 불리는 개념이다. 가만히 듣기만 해도 뇌의 운동 네트워크가 켜지는 것이다. 우리 뇌는 가능한 한 에너지를 쓰지 않으려고 해서 ‘게으른 뇌’ 가설도 있을 정도인데, 왜 이렇게 쓰지 않아도 되는 에너지를 쓰는 것일까.

이는 뇌의 정체성, 즉 존재 이유와 관련이 있다. 생명의 역사에서 뇌는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세상에서 다음 상황을 예측하는 것이야말로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쪽으로 가면 무엇이 있을지, 자욱한 안개가 걷히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이러한 예측을 잘할수록 생존 가능성은 높아진다. 미리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 역사상 최단 시간에 지구 전역에서 번성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능력 덕분이다.

이 예측 능력은 음악을 들을 때도 자연스럽게 가동된다. 다음엔 어떤 음이, 어떤 박자로 나올지 미리 그려 보며 따라 부르거나 함께 부를 준비를 한다. 흥얼거림은 이런 과정을 한층 가속화시키는 일종의 예행연습이다. 결국 흥얼거림이라는 게 일종의 따라 하기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몸의 움직임까지 더해지면 예측은 더욱 정교해진다. 기분이 좋아지면 도파민까지 나오니 계속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특정한 음악 활동을 통해 뇌가 변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직업 가수는 입술과 성대, 목의 근육을 담당하는 뇌 구조가 일반인과 다르게 발달한다. 뇌의 관련 영역을 반복적으로 쓰면서 노래 부르기에 최적화되는 구조로 바뀌는 것이다. 왼손을 예민하면서도 정확하게 움직여야 하는 바이올리니스트는 왼손을 담당하는 오른쪽 뇌의 대뇌피질 영역이 커지고, 양손을 정신없이 사용해야 하는 피아니스트는 양쪽 뇌를 연결하는 뇌량이 두꺼워진다. 두 손을 담당하는 좌뇌와 우뇌가 엄청난 속도로 정보를 교환하는 반복이 계속된 결과다.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뇌가 바뀌는 것이다.

꽃 피고 새 우는 봄에는 흥얼거림이 늘어나는 게 자연스럽다. 다만 안 그래도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은 세상인데 전쟁의 여파까지 몰려오니 뒤숭숭한 봄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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