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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자의 슬픔[내가 만난 명문장/박서영]

입력 | 2026-04-05 23:09:00


“부모 자식 사이의 싸움에서 주도권을 쥐는 건 언제나 자식 쪽이다. 아마 의도 여하를 불문하고 창조자가 창조된 자에게 심판받는 것이 현실의 법칙일 것이다.”

─아베 코보 ‘제4 간빙기’ 중



박서영 작가

이상한 꿈에서 깨어난 아침에는 해석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곧장 스마트폰을 들어 인공지능(AI)에게 꿈의 내용을 전하면, 신화적 해석과 내 무의식에 대한 분석을 그럴듯하게 들을 수 있다. 내 생활에 대한 AI의 각주는 그뿐만이 아니다. 의사처럼 진단을 내리고, 반려묘 활동량에 따른 사료 조합을 추천하기도 한다. 때때로 실수를 저지른 뒤에는 AI에게 ‘괜찮을까?’ 묻고 싶은 마음도 든다. 나에게 맞춰 학습됐으니 높은 확률로 ‘괜찮다’는 말이 나올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AI에게 프롬프트를 어떻게 입력하느냐가 중요한 기술이 된 세상이다. 인간이 기계의 문법에 맞춰줘야 한단 얘기다. 모두 기계에게 판사봉을 쥐여주고 판결받는 인간으로 전락했지만 이를 이상하게 여기는 이는 없다. 아베 코보의 ‘제4 간빙기’는 이 지점을 정확히 그려낸다. 자그마치 1959년에 쓰인 소설이다. 작가가 정말 미래를 여행하고 온 게 아닐까 싶다. ‘예지력’이라고 하는 영적 개념을 ‘데이터’에서 추출해 차갑고 딱딱한 ‘기계’에 이식한다.

여기서 예언은 단순한 지침이 아니다. 인간의 사고를 통치하는 또 하나의 권력이다. 소설 속 국가의 존망은 예언 기술의 발전 수준에 좌우되는 듯 보인다. 기계에게 내 얼굴과 지문을 인식시킴으로써 자기 존재를 인정받고, 알고리즘이 짠 틀 안에 갇혀 정보를 읽고, 삶의 궤적을 바탕으로 신용 등급을 부여받고, 그리하여 AI 만능주의에 물든 지금, 이 소설을 읽는 기분이란 거울을 보는 것처럼 무척 섬뜩하고 기이하다.

먼 훗날, 우리를 심판하는 것은 우리의 후손일까, 아니면 우리가 만든 기술일까?



박서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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