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부모 사망-이혼으로 조부모가 양육… 정서적 안정감 크다는 강점 있지만
초등생이 조부모 간병-가사 맡기도
양육보조금 지자체마다 달라 문제… 권고 기준 맞춘 곳은 서울-인천뿐
가정 위탁을 통해 11년째 조부모와 함께 사는 김모 군(19)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건강이 악화된 할머니와 어린 동생을 돌보고 있다. 김 군은 “집안일과 생계를 도맡아 해야 해 진로는 신경도 못 쓴다”며 “지금은 할머니 건강이 가장 큰 걱정”이라고 했다.
친부모의 사망이나 이혼 등의 이유로 아동을 위탁한 가정 10곳 중 6곳은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가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부모의 고령화나 건강 악화 등으로 아이들이 되레 ‘영케어러’(가족 돌봄 청소년)가 되는 사례가 많지만, 이에 대한 지원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조부모 손에 맡겨진 위탁아동이 ‘영케어러’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현재 조부모 위탁가정은 4412가구로 집계됐다. 2024년 12월 기준 전체 위탁가정은 7623가구로, 위탁가정 10가구 중 6가구(57.9%)가 조부모가 손주를 맡아 키우는 셈이다.
조부모 위탁은 친족과 같이 살 수 있어 정서적 안정감이 크다는 강점이 있다. 그러나 조부모가 나이 들어 건강이 나빠지면 가족 내 돌봄 공백을 아동이 메우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한 가정위탁지원센터 관계자는 “가족이 손자와 할머니뿐이라 손자가 부양하거나, 초등학생이 조부모의 간병과 가사를 책임지는 경우도 있다”며 “‘키워준 값을 하라’며 친척이 아이에게 조부모 부양 책임을 떠넘기기도 한다”고 했다.
조부모가 고령, 질병 등의 이유로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양육관리비 등 위탁가정에 지급되는 지원비와 기초생활수급 등 복지 급여만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조부모를 돌보는 한 고등학생(17)은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지만 학원비 등 돈이 많이 들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 사회복지사 1명이 위탁아동 53명 담당
영케어러의 간병과 가사 부담 등을 덜어주려면 위탁가정의 상황을 파악해 맞춤형 서비스를 연계하는 게 필수이지만 후속 지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담당 인력이 부족한 탓이다. 초록우산에 따르면 재단 산하의 가정위탁지원센터 사회복지사 1명이 담당하는 위탁아동은 지난해 6월 평균 53.3명에 달한다. 전문가들이 권고하는 1인당 적정 사례(20명)의 두 배가 넘는다. 또 사회복지사가 위탁가정을 방문하러 이동하는 데만 하루 평균 168분이 소요됐다. 지역별 가정위탁지원센터가 전국에 18곳뿐이라 실제 상담보다 이동에 상당한 시간을 쏟는 것이다.
위탁아동에게 지원하는 양육보조금 등 경제적 지원이 지역마다 다르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보건복지부는 0∼6세 월 34만 원 이상, 7∼12세 월 45만 원 이상, 13∼17세 월 56만 원 이상 등으로 양육보조금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권고 기준을 맞춘 지자체는 서울과 인천 두 곳뿐이다. 충남의 일부 지역은 13세 이상에게 권고 금액의 절반인 28만 원만 지원하고 있다. 고주애 초록우산아동복지연구소 부소장은 “아이들의 연령이 높아질수록 교육, 의료 등 비용이 더 많이 드는데 정부의 권고가 잘 지켜지지 않아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 이양 사업이던 가정위탁지원센터를 국고 보조 지원 사업으로 바꾸기로 했다. 인력 확충을 통해 위탁가정 관리도 강화할 방침이다. 권고 사항이던 양육보조금 지급 기준도 법령으로 강제성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조부모 위탁가정 아동이 영케러어가 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상반기(1∼6월) 중 양육보조금 지급 기준 등을 강화하는 입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성은 기자 bb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