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기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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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은 6·3 지방선거에서 당 차원의 선거 감시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유튜버 전한길 씨 등과 ‘끝장토론’을 한 직후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국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선거 시스템을 바꾸는 문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어젠다가 되었다”며 “선거 시스템의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한 공감대는 이루어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검증 앞세운 부정선거론의 함정
장 대표는 부정선거 주장에 동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정선거 주장에 대한 모호한 태도는 적극적인 동조보다 더 위험하다. ‘의혹이 있으니 검증하자’는 말은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음모론자들이 제도권 정치로 침투할 통로를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부정선거가 1940년대 미국이 원자폭탄 개발을 위해 추진한 ‘맨해튼 프로젝트’와 같은 극비 프로젝트라는 망상을 늘어놓은 음모론자들의 결론은 늘 “그래서 검증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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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론이 확산하는 데 ‘소쿠리 투표’, 투표용지 반출 등 선거관리위원회의 자충수가 배경이 됐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엄정한 선거 관리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옳다. 하지만 제도의 허점이 음모론에 정당성을 부여해선 안 된다.
부정선거에 대한 장 대표의 모호한 태도는 현재 국민의힘이 맞은 정치적 위기를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이미 6·3 지방선거 패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공포가 당을 잠식할수록 극단적 지지층과의 연대를 합리화하려는 유혹도 커진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2024년 총선 패배 이후 계엄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치달으며 부정선거 음모론자들과 손을 잡았다. ‘윤 어게인(again)’을 외치는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지금도 선거 패배의 위기를 맞은 국민의힘을 흔들며 공포를 자극하고 있다.
이런 구도는 낯설지 않다. 비(非)백인 인구의 증가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 공화당은 ‘민주당이 조직적으로 불법 이민자들을 투표에 참여시킨다’는 부정선거론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검증’을 앞세우며 흑인과 히스패닉 투표권을 제한하는 법안들을 밀어붙였다.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극단적 지지층의 손을 잡았지만 음모론자들과 성난 백인 유권자들의 연합에 포획된 공화당은 결국 부정선거를 앞장서 선동하는 대통령을 두 차례나 자신들의 손으로 선출했다.
보수의 잣대는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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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