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문명이 깨진다 7세기∼근대 초 건립 역사적 유물들… 이란-이스라엘 세계유산 38곳 달해 유네스코 “문화재 보호” 성명에도 강제력 없어… 약탈-불법거래 우려
이란 국가유산 ‘그랜드 바자르’는 2일(현지 시간)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곳곳이 훼손됐다. mohammad.jalaee.pov 인스타그램 캡처
이스라엘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화이트 시티’는 1일(현지 시간) 이란 미사일 공격으로 최소 2개 이상의 건물이 파괴됐다. 사진 출처 바우하우스센터 인스타그램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길어지며 해당 지역의 문화유산들이 위기에 빠졌다. 이미 여러 유적이 피해를 입었으며, 박물관 등은 소장품을 안전지역으로 옮기고 있으나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네스코는 “모든 문화유산은 1954년 헤이그 협약과 1972년 세계유산 및 자연유산 보호 협약에 따라 보호된다”며 긴급 성명을 발표했으나, 사실상 강제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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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중동 국가 가운데 세계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다. 고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인 ‘페르세폴리스’와 이슬람 건축 예술의 정수로 꼽히는 ‘이맘 광장’ 등 29개나 된다.
그중 하나인 ‘골레스탄 궁전’은 폭격 여파로 곳곳이 부서졌다. ‘이란의 베르사유 궁전’으로 불리는 이 궁전은 페르시아 전통과 서구 예술이 결합한 카자르 왕조 시대(1789∼1925년) 걸작. 페르시아식 스테인드글라스 ‘오르시(orsi)’가 산산조각 났으며, 정교한 거울 장식도 떨어져 나갔다.
이스라엘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화이트 시티’. 사진 출처 ©ChameleonsEye·세계기념물기금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사해 사본’ 등이 소장된 이스라엘국립박물관과 이란국립박물관, 페르세폴리스박물관 등은 현재 문을 닫고 소장품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중동 전체가 화약고가 될 위험이 커지며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 등도 비상이 걸렸다. 카타르국립박물관, 도하 이슬람예술박물관 등이 잠정 폐관한 상태다.
● “문화유산은 인류 공동 책임”
이란 국가유산 ‘그랜드 바자르’. 테헤란=신화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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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중동 지역에서 군사 작전 중 고의적으로 파괴되거나 부수적으로 훼손되는 문화유산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카타르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무력 충돌 중 문화유산 보호 세미나’에서 사이드 빈 압둘라 알 수와이디 국제인도법 국가위원회 위원장은 “문화유산이 상대편에 대한 복수나 선전, 불법적 이득을 위한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고 했다.
중동 전문가인 이예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특임강의교수는 이러한 문화유산 공격에 대해 “공동체적 기억과 정체성을 약화하려는 상징적 메시지가 담긴 경우가 많다”며 “시리아 내전 당시 이슬람국가(IS)가 팔미라의 신전을 의도적으로 파괴한 사건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이어 “분쟁이 장기화되면 국가 통제력이 약해지고 무장 세력의 자금이 부족해져 문화유산 약탈 및 불법 거래 문제로 확대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