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다 쓰고 몸 망친다’ 뜻 ‘패가망신’ 회의-SNS서 애용…“확실히 보여줄 것” 주로 주가조작 산재 공직부패 등 겨냥 역대 대통령 중 盧, 尹도 사용한 적 있어
이재명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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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에서 장난치다간 ‘패가망신’ 한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겠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6월 11일 취임 일주일 만에 첫 현장 행보로 나선 한국거래소에서 한 말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패가망신(敗家亡身)’이란 ‘집안의 재산을 다 써 없애고 몸을 망친다’는 뜻이다. 단순히 실패하는 수준이 아닌 재산과 명예, 사회적 지위까지 모두 잃는 심각한 몰락을 의미한다.
이 대통령은 주가조작 등 불법 행위에 대한 강력한 경고성 메시지를 낼 때 이 단어를 자주 썼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주목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9개월간 공식 석상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패가망신’을 10여 차례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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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전후 ‘패가망신’ 대상으로 주식시장에서 불공정 거래로 이익을 챙기는 세력을 겨눴다. 이 대통령은 대선 전날인 지난해 6월 2일 서울 여의도공원 마지막 유세에서 “앞으로 주가 조작을 하면 패가망신하게 할 것”이라며 “주가 조작해서 돈 벌면 그 몇 배를 토해 내게 하겠다”고 했다. 그간 부당이득 규모에 비해 처벌 수위가 낮았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취임 직후에는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에 대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는 등 엄벌할 방침“이라며 ”대한민국 주식시장에서 장난치다간 패가망신한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겠다“고도 했다. 엄단 의지를 밝힌지 약 한 달 만에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이 출범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1월 14일 “주가조작 패가망신은 빈 말이 아닙니다. 정상적으로 투자하십시오”라고 적었다. X
이 대통령이 ‘주가조작=패가망신’을 다시 꺼내든 건 지난해 9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다. 이 대통령은 당시 주식시장과 관련해 “주가 조작, 부정 공시는 엄격히 처벌해서 주가조작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겠다”며 “지금은 주가조작을 해서 이익을 본 것만 몰수하는데 주가조작에 투입된 원금까지 싹 몰수하라고 해 놨다”고 했다.
엄벌 의지는 올해도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1월 14일 X(엑스)에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 확대 개편 소식을 공유하며 ”주가조작 패가망신은 빈말이 아니다“며 불공정거래에 대한 강한 대응 의지를 재확인했다. 지난달 25일에는 X에 주가조작 신고포상금 개편 조치를 소개하며 ”주가조작 패가망신“이라고 적었다.
● 초국가 범죄, 산재, 부패에도 ‘패가망신’ 경고
스캠(사기) 등 초국가범죄에 대해서도 ‘패가망신’ 경고가 나왔다. 줄곧 주식시장을 겨냥하던 ‘패가망신’ 경고가 캄보디아 등 동남아 지역에서 잇따른 한국인 대상 범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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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뒤인 26일에는 정부서울청사 ‘초국가범죄 특별대응 태스크포스(TF)’를 방문해 “한국인을 건드리면 패가망신한다는 사실을 적극 알리라”고도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월 30일 X에 스캠 범죄 단속 성과를 전하며 “한국인 건들면 패가망신, 빈말 같습니까”고 적었다. 이후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 X
이 대통령이 주가조작과 함께 취임 초반부터 엄벌을 강조한 산업현장 중대재해에도 ‘패가망신’ 경고가 등장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9일 국무회의에서 반복되는 산업재해를 두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에 가깝지 않느냐”며 “엄벌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남의 인생을 통째로 다 망가뜨리고 그것으로 돈 벌어먹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되나. 기본적인 문화를 바꿔야 한다”며 “이걸 하면 ‘패가망신’한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또 지난달 26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고보조금 부정수급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뒤 “국민 혈세를 눈먼 돈으로 보고 있으니 세금 도둑질이 일어난다”며 “도둑질하다 걸리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누구나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철저한 부정수급 방지대책을 세워달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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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대통령도 사용했던 ‘네 글자’의 명암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주가조작 신고포상금 개편 조치를 소개하며 “주가조작 패가망신”이라고 적었다. X
역대 대통령들도 ‘패가망신’이라는 단어를 드물게 사용한 적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12월 대통령 당선 직후 청탁 풍조를 뿌리뽑겠다는 의미로 “누구든지 이권이나 인사청탁을 하다가 걸리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경고했었다. 하지만 대우건설 남상국 당시 사장이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 씨를 만나 연임 청탁을 하며 3000만 원을 건넨 사실이 드러났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대선주자 시절인 2021년 “(대선 도전은) 개인적으로 보면 불행한 일이고 ‘패가망신’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를 가리킨 표현이었다. 공교롭게 12·3 불법 비상계엄으로 그의 삶은 앞선 발언과 비슷하게 흘러갔다.
이 대통령의 패가망신 경고는 전직 대통령들보다 잦다. 이 때문인지 ‘삐끗’하는 일도 있었다.
이 대통령은 1월 30일 X에 스캠 범죄 단속 성과를 전하며 “한국인 건들면 패가망신, 빈말 같습니까”고 적었다. 같은 내용을 캄보디아 공용어인 크메르어로 병기하기도 했다. 캄보디아 전체를 범죄 집단으로 낙인찍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당시 캄보디아 측은 김창룡 주캄보디아 대사를 불러 이 대통령이 올린 글에 대해 문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 대통령은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
반면 강한 경고 메시지가 경각심을 높이고 처벌 강화로 이어지면서 정책의 효과를 더하고 홍보 효과까지 낸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주가조작 패가망신’ 기조에 따라 출범한 주가조작 합동대응단은 종합병원·한의원·대형학원 등을 운영하는 ‘슈퍼리치’와 금융사 임원 등 7명이 주가 조작을 벌여 400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의심되는 1호 사건을 공표했다. 이어 2호 사건으로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20억 원대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는 NH투자증권 고위 임원을 적발하는 등 대규모 주자조작 사건이 잇따라 드러나기도 했다.
조혜선 기자 hs87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