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별 물가 지표를 확인하는 지표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빅맥 지수’입니다. 전세계 방방곡곡에 퍼져 있는 프랜차이즈인 맥도날드 매장에서 ‘빅맥’의 가격을 달러로 환산하여 비교하는 이 ‘빅맥 지수’는 국가별 환율의 적정 수준을 평가하고, 나아가 국가별 경제력과 물가 지표를 비교하는 지표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햄버거 하나도 국가별로 가격이 다른데, 게임은 어떨까요? 게임은 전세계에서 서비스되는 글로벌 디지털 상품입니다. 이 게임은 환율, 구매력, 통화 안정성, 시장 신뢰도를 동시에 반영하여 가격을 책정하는데요.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국가의 경쟁력에 따라 게임 가격이 크게 달라지고 심지어 해당 국가의 화폐를 인정하지 않는 사태도 자주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지역별 스팀 가격(자료 출처-스팀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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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에서 국가마다 게임 가격은 어떻게 책정될까?
벨브의 ‘스팀’은 현재 전세계 PC 게임 시장을 지배하는 대형 ‘ESD’(다운로드형 전자 소프트웨어 유통망) 플랫폼입니다. 전세계 200개 이상의 국가와 지역에서 월 유저수 약 1억 3천만 명에 이르며, PC 게임 디지털 다운로드 시장 중 무려 70~75%를 점유하고 있는 플랫폼이기도 하죠.
이렇게 전세계에서 서비스를 진행 중인 플랫폼인 만큼 ‘스팀’에서 판매되는 가격이 곧 그 게임의 가치로 인정받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요. 흥미로운 부분은 스팀은 게임 가격을 직접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스팀 권장 지역 가격(자료 출처-스팀)
이 ‘권장 지역 가격’은 단순 환율 변환이 아니라 구매력(PPP)·소비자 물가 지수 등 각 국가의 수준을 고려해 산출되며, 시장 규모와 환율 안정성 같은 요소까지 함께 포함되어 해당 국가에서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 범위를 제안합니다.
이러한 정책을 펼친 이유는 “정품 구매 유저를 늘리자”라는 의도였습니다. 게임 가격이 현지 물가보다 월등히 높으면 발생하는 게임 불법 복제 활성화를 막자는 취지였죠. 그래서 한국 역시 스팀 게임들이 AAA급 게임은 6~8만 원, 인디 게임은 1~2만 원 등 일정한 가격으로 형성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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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경쟁력이 무너지면, 게임 결제 화폐에서 퇴출?
이 스팀의 가격 책정 정책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국가가 바로 아르헨티나와 튀르키예입니다. 두 국가는 오랫동안 스팀에서 대표적인 저가 지역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이는 퍼블리셔나 개발자들이 호의를 베푼 것이 아니라 두 국가의 구매력을 기반으로 한 권장 가격 체계 때문이었죠.
하지만 2020년 시작된 코로나 팬더믹을 거치고, 두 국가의 정치, 경제 불안정이 심화됨에 따라 상황이 급격히 바뀌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짧은 시기 무려 세 자릿수에 가까운 인플레이션을 겪었습니다. 튀르키예 역시 리라 가치가 폭락하며, 통화 불안정이 이어졌고, 심각한 경제 위기를 초래했죠. 문제는 스팀 가격이 현지 통화 기준으로 유지된다는 점이었습니다.
리라화와 페소의 붕괴(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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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밸브는 2023년 중요한 결정을 내립니다. 아르헨티나의 페소와 튀르키예의 리라를 퇴출하고, 미국 달러 즉 ‘USD’ 기반 가격 체계로 강제 전환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두 화폐를 통한 결제를 막고, 미국 달러 환율 그대로 게임을 판매한 셈이죠. 이 사건은 국가 경제가 흔들리면 게임 시장에서 통용되는 가격 정책 역시 달라질 수 있다는 아주 중요한 사례로 남았습니다.
콘솔 플랫폼은 어떻게 가격을 책정할까?
그렇다면 PC 플랫폼이 아닌 콘솔 게임은 어떻게 가격이 책정될까요? PC 플랫폼과 달리 콘솔 시장은 구조가 조금 다릅니다. 바로 콘솔 제조사인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닌텐도 등의 기업이 직접 개발을 진행하고 자체 플랫폼 생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PSN 스토어(자료 출처-PSN)
이 때문에 콘솔 플랫폼에서는 스팀처럼 극단적인 가격 격차가 장기간 유지되는 경우가 드뭅니다. 플랫폼이 가격 전략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콘솔 생태계는 계정 이동이나 우회 구매가 상대적으로 어렵고, 플랫폼이 가격 전략을 통제합니다. 따라서 스팀에서 나타났던 60~70% 수준의 격차가 장기간 유지되는 구조는 드물고, 가격 역시 크게 변동이 없습니다. 여러 국가의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판매를 진행하는 PC와 달리 콘솔 시장은 콘솔 게임기를 구매한 이들에게만 집중하기 때문에 지역별 퍼블리셔가 이미 시장을 파악하고 적절한 가격을 책정하여 이를 소비자에게 공지하는 형태입니다.
이처럼 게임 가격은 단순 소비자 체감 문제가 아닙니다. 퍼블리셔는 가격을 통해 환율 리스크, 시장 안정성, 소비력, 규제 환경을 동시에 판단하고, 이에 대한 모든 판단의 결과가 바로 게임 가격으로 나타납니다.
이에 위에서 소개한 사례와 같이 경제가 불안정한 국가는 저가 시장이 되거나 심지어 통화 체계에서 배제되기도 하죠. 이러한 현상은 국가별 경제 지표를 설명하는 것에도 도입될 수 있는 부분인데요.
이는 1980년대 도입되어 현재도 운영되는 ‘빅맥’ 지수와 같이 게임 가격을 기반으로 특정 시장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이 국가가 얼마만큼의 경쟁력을 지녔는지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지표가 만들어질 수도 있는 사안입니다. 과연 놀이 문화에서 시작된 게임이 경제 지표로 사용되는 날이 올 수 있을지 앞으로의 모습이 궁금해집니다.
조영준 게임동아기자(june@gamedong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