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준 신임 중국한국상회 회장 인터뷰 中 진출 3500개 韓 기업 대표… 中서 학석박사 학위 딴 ‘중국통’ 中 전기차에 韓 고전 중이나… 수소차 개발로 돌파구 모색 세대-계층-지역별 中 공략 필요… 한중 관계 회복 따른 훈풍 기대
이혁준 신임 중국한국상회 회장 겸 현대자동차 중국 총재는 지난달 25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의 현대차 사무실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진출 전략은 중국을 동등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학사·석사·박사를 모두 중국에서 마친 ‘중국통’으로 꼽힌다.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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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중국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의 우수한 경쟁자라는 것을 인정해야 중국 진출 한국 기업의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전략 마련이 가능할 것입니다.” 지난달 27일 중국한국상회의 33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혁준 현대자동차 중국 총재(57)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취임 이틀 전인 지난달 25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의 현대자동차 사무실에서 만나 “현시점에서 중국 시장을 공력할 때 가장 중요한 건 ‘현지화에 대한 진정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2008년 베이징시 당국이 여름올림픽을 앞두고 택시 디자인의 변경을 추진했던 때를 설명했다. 당시 현대차는 칭화대 산업디자인 교수진과의 협업을 통해 베이징의 사계(四季)를 상징하는 4가지 색, 황제를 뜻하는 노란색 띠를 두른 디자인을 제출했다. 베이징 당국은 “이렇게까지 공들인 디자인은 처음 봤다”며 호평했다. 이후 현대차의 쏘나타와 엘란트라는 베이징 택시의 주력 차종으로 쓰였다.》
이 총재는 한국 주요 기업의 현직 중국 법인장 중 거의 유일하게 학사·석사·박사를 모두 중국에서 마친 인물이다. 2001년 현대차 북경대표처 근무를 시작으로 25년간 베이징에서 일한 ‘중국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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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한국은행에 다니셨던 부친께서 늘 ‘미래에는 인구가 많은 나라가 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말하셨고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대학 입학 때는 아직 중국과 수교 전이라 대만대에 진학했다. 재학 중인 1992년 한국이 중국과 수교했다. 대만과는 단교해 대만에서 학업을 이어가기 쉽지 않았다. 개인 사정이 더해지면서 석사를 중국 본토에서 하려는 당초 계획이 어려워졌다. 차라리 중국 본토 대학에 편입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정보가 거의 없었다. 중국의 10대 중점대학 중 5곳을 정했고, 무작정 자필로 쓴 편지와 성적표를 대학 총장 앞으로 부쳤다. 다행히도 모든 대학에서 받아주겠다는 회신이 왔고 학사 여건이 가장 좋은 북동부 지린(吉林)대를 선택했다. 한국 학생이 대만에서 중국으로 편입하겠다고 하니 신기했던 것 같다. 덕분에 한중 수교 후 중국에서 졸업한 한국인 유학생 1호가 됐다.”
―중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한 비결은….
“당국의 과감한 목표 설정과 압도적인 실행 속도 덕분이다. 5개년 계획 등을 통해 목표가 정해지면 기업들이 달라붙어 치열하게 경쟁한다. 국영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민간 기업도 마찬가지다. 한번 목표가 정해지면 나중에 번복되거나 슬그머니 사라지는 사례가 거의 없다. 당국은 정책과 예산을 통해 집중 지원에 나서고, 초기 경쟁에서 앞서 나가는 업체에는 추가 인센티브까지 부여한다. 어떤 면에선, 과거 박정희 정부 시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핵심 산업을 육성했던 것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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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중국의 인적 자원을 활요했다면 이제는 탄탄한 공급망이 중국의 장점이다. 전기차만 봐도 CATL의 배터리 등 최고 수준의 부품 공급망이 갖춰져 있다. 중국 공급망을 잘 활용하면 한국 기업 또한 중국을 글로벌 수출 거점으로 활용하는 ‘인 차이나 포 글로벌(In China for Global)’ 전략이 가능하다. 실제 현대차의 중국 합작 브랜드 ‘베이징현대’가 최근 출시한 일렉시오 또한 올 1분기(1∼3월) 호주를 시작으로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 등으로 수출될 예정이다.”
―최근 중국에서 한국차의 상황이 좋지 않다.
“지금과 달랐던 적도 많다. 2016년에는 중국 내수 시장에서만 연 185만 대의 현대·기아 차가 팔렸다. 특히 당시 베이징시의 택시 10대 중 7대는 쏘나타 혹은 엘란트라였다. 하지만 2017년 이후 한중 관계가 경색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듬해부터 판매량이 연간 수십만 대씩 줄었다. 지금은 연 25만 대 수준에 불과하다.”
―다른 요인은 없었을까.
“2010년대 중국에서 유럽, 일본 브랜드들과 경쟁하는 와중에 상대적으로 브랜드 관리에 소극적이었던 점도 있다. 그 와중에 중국 로컬 브랜드들이 치고 올라왔다. 전기차로의 전환이 늦은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중국 자동차 산업의 주력이 전기차가 될 것임을 알았지만 우리의 확신이 크지 않았다. 우리도 전기차 개발을 하긴 했지만 확신 없이 만든 상품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는 의미다. 우리를 포함해 대부분의 외국 기업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중국 업체들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기술력을 키웠다. 중국은 물론 세계 시장에서 중국 전기차의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따라가지 쉽지 않다. 만약 우리가 2010년대 중반 ‘중국에서만큼은 전기차에 집중하겠다’고 결정하고 전력을 다했다면 지금 세계 전기차 시장의 판도가 달라졌을 것이라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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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전 세계에서 총 9000만 대의 신차가 팔린다. 그중 3분의 1인 3000만 대가 중국에서 팔린다. 이런 시장을 포기한다는 건 글로벌 제조사로서는 어불성설이다. 중국은 자율주행, 배터리 등 미래차 기술 경쟁의 최전선이자 가장 빠르게 상용화되는 무대다. 당장 차를 많이 팔면 좋겠지만, 중국 업체들과 경쟁하며 그들이 앞서가는 부분을 빨리 파악하고 분석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동남아시아, 중동 등 다른 글로벌 시장에서 밀리지 않을 수 있다.”
―과거보다 지금 중국 사업이 더 어렵나.
“20년 전 중국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기업에 ‘기회의 땅’이었다. 기술력과 자본이 있다면 외국 기업이라고 차별을 받지 않았고 일정 부분 ‘우대’도 받았다. 지금은 중국 기업과 같은 운동장에서 정면으로 경쟁해야 한다. 자국 기업에 대한 정부의 육성 정책과 산업 고도화로 경쟁의 강도는 훨씬 세졌다. 이제는 한국 제품들이 중국 동종 제품과 비교했을 때 경쟁력이 크게 높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확실한 기술 우위와 브랜드 경쟁력이 없다면 치열한 중국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이런 고민 끝에 현대차가 수소차를 미래 산업으로 선택한 것인가.
“전기차 경쟁이 과열된 시장에서 새로운 판을 짜는 전략이다. 수소연료전지 체계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판단했다. 전기차에서는 한국과 중국 기업이 ‘경쟁자’이지만, 수소차에서만큼은 한국이 ‘기술 공급자’로 포지셔닝 할 수 있다. 중국 정부도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라는 목표가 확고한 만큼 점진적으로 수소차 시장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중국이 1996년 당시 경제 정책에 전기차와 수소차 등 신에너지차 육성을 포함시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현재 전기차는 중국 내수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말 수소버스 249대 입찰 계약을 따내 화제를 모았다.
“하루아침에 거저 얻은 성과가 아니다. 2023년 말 현대차 수소 공장이 있는 광저우 황푸구에서 마라톤대회가 열렸다. 마라톤 참가자들을 위한 셔틀버스, 짐을 나르는 물류 트럭을 모두 수소 차량으로 제공했다. 시민 반응 또한 좋았다. 수소차가 확산되려면 시내버스 등 대중교통에 먼저 보급해 시민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방정부를 설득했다. 수소가 위험하다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수소에너지의 안전함과 깨끗함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한국의 적용 사례와 관련 정책들을 일일이 스터디해서 지방정부에 제안서를 보내기도 했다. 이런 노력들이 쌓여 입찰 성공에 긍정적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한중 관계가 회복되고 있다는데 실감하나.
“많은 중국 지인들이 먼저 전화를 걸어 현 한국 정부를 자주 칭찬할 정도다. 특히 중국에서는 국가 지도자들이 좋은 관계를 맺는 게 많은 영역에 영향을 준다. 요즘은 한국 기업이라면 어디서나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한중 관계가 지속적인 상호 보완적 협력 관계를 만들어 나가길 기대한다.”
―그런데도 중국 내수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쉽지 않다.
“‘중국인 14억 명에게 물건 한 개씩만 팔아도 성공한다’는 옛말에 기대는 것은 가장 위험한 접근이다. 중국은 지역, 세대, 계층에 따라 가치관과 소비 행태가 크게 다르다. 베이징에는 지식인이 많고 상하이 출신들은 세련되고 자부심이 넘친다. 중국 교역을 주도한 저장성 상인들은 깐깐한 편이다. 도시와 농촌의 현격한 소득 및 교육 격차는 말할 것도 없다. 세대 간 간극도 크다.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생)와 링링허우(零零後·2000년대생)조차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이런 점을 속속들이 파고들어야 한다.”
―중국 진출 기업인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우리는 무심코 자주 쓰는 표현인데, 중국에서는 ‘실패’라는 말을 잘 안 쓴다. 한국 기업은 중국과 거래할 때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업 중 벽이 있더라도 ‘안 된다’고 할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란 식으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계획했던 일정이 틀어졌더라도 방향성이 맞다면 ‘취소’가 아니라 ‘연기’라고 받아들이고 계속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만큼 속도가 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시장 전략을 짜야 한다.”
―한중의 협력 관계는 어떤 식으로 이뤄져야 하나.
“수소차를 예로 들어 보자. 중국이 수소차를 유럽에 팔고 싶은데 유럽에서는 중국 수소차 업체에 대한 인지도나 믿음이 부족하다. 중국 업체가 차체를 만들고 현대차가 만든 엔진을 장착하면 어떨까. 중국은 자동차 제조에 필요한 공급망이 잘 갖춰져 있고, 현대차는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엔진 기술과 브랜드 인지도가 있다. 이런 협력이 이뤄지면 글로벌 시장에서 진입 장벽을 대폭 낮추고 가격 경쟁력까지 담보할 수 있다. 이런 분야를 더 적극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중국한국상회 회장으로서 포부는….
“회원사 가운데 상당수가 중견 기업이다. 이들의 고충에 더 귀를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도울 생각이다. 최근에 한 회원사가 지방에 공장을 늘리려고 현지 부동산 업체를 통해 부지를 알아봤다. 그런데 선정된 지역을 보니 사업성이 떨어지는 곳이더라. 한번 잘못 지으면 몇십 년은 고생할 거 아닌가. 그래서 평소 다져 놓은 중국 네트워크를 활용해 대신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수십 년간 중국에서 쌓아온 네트워크와 경험을 역량 있는 한국 기업과 청년 인재가 중국에 안착할 수 있도록 쓰겠다.”
이혁준 신임 중국한국상회 회장
△1969년 서울 출생
△중국 지린(吉林)대 졸업
△중국 베이징대 EMBA
△중국 런민대 기술경제학 박사
△(현)현대자동차그룹 중국지역 총재
△(현)중국한국상회 33대 회장
△1969년 서울 출생
△중국 지린(吉林)대 졸업
△중국 베이징대 EMBA
△중국 런민대 기술경제학 박사
△(현)현대자동차그룹 중국지역 총재
△(현)중국한국상회 33대 회장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