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 트루스소셜에 게재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그의 부인 미셸 여사의 얼굴을 원숭이와 합성한 동영상. 트루스소셜 캡처
광고 로드중
홍진환 사진부 차장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몇 달간 자신을 교황, 전사,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묘사한 것은 물론이고, 그린란드 문제와 이민자 단속 등과 관련된 인공지능(AI) 이미지와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해 왔다. 과거 미국 대통령들이 정제된 텍스트와 공식 사진으로 국민과 소통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AI 사랑은 그의 재선 도전 기간에 본격화됐다. 이 무렵 ‘미드저니’와 ‘소라’, ‘그록’ 같은 고도화된 생성형 AI 이미지 모델이 등장하면서 누구나 손쉽게 고품질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이후 백악관에 재입성하면서 트럼프의 AI 콘텐츠 사용은 더 과감해졌다.
광고 로드중
단순히 효율만 놓고 본다면 이만한 커뮤니케이션 수단도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포토샵을 이용해 홍보물을 만들어도 몇 시간씩 걸리고, 메시지 정리에도 고도의 정교함이 필요하다. 반면 AI와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하면 단 몇 분 만에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직관적인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학계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소통 방식을 ‘슬로파간다(Slopaganda)’ 현상으로 설명한다. 슬로파간다는 인공지능이 생성한 저급한 콘텐츠를 뜻하는 ‘슬롭(Slop)’과 정치적 선전·선동을 뜻하는 ‘프로파간다(Propaganda)’의 합성어다. 생성형 AI를 이용해 품질이 낮거나 조작된 콘텐츠를 대량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특정한 정치적·이념적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활동을 말한다.
최근 슬로파간다 생산·유통의 구조적 측면을 보도한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하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생산된 저급한 콘텐츠를 정부 공식 채널에 적극적으로 공유하면서 주변부에 머물던 밈 제작자들을 여론의 중심부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이들의 콘텐츠를 재게시하는 순간 해당 네트워크가 즉각적인 신뢰성을 얻고, 제작자들은 열렬한 친(親)트럼프 수호대가 된다는 설명이다. 이를 통해 트럼프를 찬양하고 반대 진영을 비하하는 콘텐츠가 무한 증식하는 온라인 생태계가 만들어진다고 분석했다.
NYT는 게이머들에게 인기 있는 메신저인 디스코드에서 최소 12개 이상의 밈 그룹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X(옛 트위터)에서 활동 중인 ‘그린 프로그 랩스(Green Frog Labs)’의 경우 30만 명 이상의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고, 콘텐츠 조회수는 1억 뷰를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적극적인 ‘트롤링’(일명 ‘어그로’)으로 이들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광고 로드중
미국 터프츠대 플레처 스쿨 교수인 대니얼 드레즈너 교수는 저서를 통해 “시각적 잔상이 사람들의 신념과 추론에 깊이 관여한다”고 말했다. 뇌는 텍스트보다 이미지를 훨씬 빠르게 받아들여 시간이 지나면 거짓이라는 맥락은 휘발되고 강렬한 잔상만 남는다. 이 이미지는 논리를 마비시키고 사람들을 극단적인 결론으로 몰아넣는다.
백악관은 미국 국민과 직접 소통하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창의적이고 효과적으로 사용한 지도자는 없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그의 진짜 속마음은 재선 운동 기간 X에 올라온 짧은 글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진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바이럴이 되는 것뿐이다.”
홍진환 사진부 차장 je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