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곳·학생 2만 명 이상 추정 불법 등록금에 학비 먹튀까지 교육부는 ‘관리강화방안’ 발표 국회에선 관련 법개정 움직임 “교육질서 교란… 엄정 차단”
부산 학부모단체 대표들이 2022년 4월 부산 연제구 경찰청 앞에서 부산 지역에서 불법 운영 중인 미인가 국제학교를 초중등교육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연 모습. 동아일보DB
● “학교 아닌 학원”… 교육 난민 양산 우려
영국에 기반을 둔 글로벌 국제학교 전문 조사기관인 ISC(International School Consultancy) 리서치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영미권 교육기관은 총 159곳. 이들 기관에 재학 중인 학생 수는 4만2129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초·중등교육법’, ‘제주특별법’, ‘외국교육기관법’에 따라 인가를 받은 정식 국제학교는 29개교(1만6000여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130곳은 교육청 인가를 받지 않은 ‘미인가 교육시설’로 분류된다. 미인가 교육시설에 재학 중인 학생은 약 2만6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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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등록금부터 기부금 징수, 시험지 유출까지
해외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미인가 교육시설은 학원으로 분류돼 있음에도 사립학교처럼 전일제 수업을 진행하고, ‘교습비’가 아닌 등록금이나 기부금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징수하는 등 학원법 위반 소지가 크다.
실제 지난해 인천의 한 미인가 교육시설은 학부모에게 미국 대학 입학시험 정답을 사전에 알려주겠다고 제안했다가 교육청 조사를 받았고, 인가를 받지 않은 불법 학교로 드러나 등록 말소 처분을 받았다. 또 2024년 5월 인천 연수구 송도동의 한 미인가 교육시설에서는 이사장이 학부모들로부터 수억 원의 학비를 챙긴 뒤 잠적했다가 교내에서 사기 혐의로 긴급 체포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해당 학교는 결국 문을 닫았다. 재학생들은 순식간에 ‘교육 난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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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코리안 블랙리스트’에 서는 미인가 국제학교를 ‘가짜 국제학교’로 칭하며 부실 운영을 지적한 외국인 강사들의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홈페이지 캡쳐
미인가 교육시설의 실태는 외국인 강사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코리안 블랙리스트(Korean Blacklist)’와 ‘레딧(Reddit)’ 등에서 ‘가짜 국제학교(Fake International School)’로 불린다.
이곳에 올라온 사례들을 보면 미인가 시설들의 문제가 드러난다. 인천 연수구 송도동의 한 유명 미인가 교육시설의 경우 불과 4개월 만에 교사 절반 이상인 12명이 중도 이탈할 정도로 인력 운영이 파행적이었다. 이탈 교사들은 회화지도 비자(E2)를 가진 강사들에게 허용되지 않은 불법 과목을 가르치게 했고, 법정 휴게시간도 보장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연예인 자녀들이 다니는 것으로 알려진 강남의 한 미인가 교육시설에 대한 혹평도 볼 수 있었다. 이탈 교사들은 “부서진 가구와 더러운 교실 등 교육 환경이 매우 열악한데도 겉모습만 화려하다”며 전문성 없는 인력 운영과 상습적인 급여 지연 문제를 지적했다.
●한국어·한국사 전무… 오로지 외국대학 입시
해외 교육과정으로 운영 중인 130여 곳의 미인가 교육시설은 대체로 미국이나 영국식 커리큘럼을 바탕으로 운영되지만, 정식 인가 학교와 달리 한국어와 한국사 수업을 필수로 제공하지 않는다. 이들 교육시설은 미국과 유럽 등 해외 대학 입시에만 집중해 한국사 대신 미국사·세계사만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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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지난해 11월 10일 미인가 교육시설에 대한 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올해 1월까지 집중 신고 기간도 운영했다. 세종=뉴시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10일 미인가 교육시설에 대한 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올해 1월까지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했고, 전국 시도교육청과 협력해 현장 특별점검도 벌이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미인가 교육시설을 체계적으로 조사·조치할 수 있도록 교육청 내 총괄 부서를 지정할 계획”이라며 “특히 폐쇄 명령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초중등교육법에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도 미인가 교육시설에 대한 규제 강화에 나서고 있다. 20일 더불어민주당 정을호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학원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는 교습비가 아닌 입학금이나 기부금 등을 편법으로 징수하는 행위에 대해 벌금과 과징금을 부과하고, 사실상 학교에 해당하는 시설의 정의를 명확히 해 행정처분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을호 의원은 “국가가 정한 인가 기준과 교육과정을 준수하는 학교와 아무런 통제 없이 운영되는 미인가 시설이 혼재하는 것은 교육 질서를 교란하는 일”이라며 “교육의 공공성과 제도적 신뢰를 확립하기 위해 제도권 밖 미인가 운영 형태를 엄정히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인가 교육시설 업계를 잘 아는 교육계 관계자는 “미인가 교육시설이 ‘한국의 가짜 국제학교’로 알려지면서 해외 대학 입학이 거부되거나 해외 교육 인증을 받지 못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며 “학부모들이 미인가 교육시설의 위험성을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주=송은범 기자 seb1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