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힘자랑, 자신감 아닌 두려움의 반영” 꼭짓점 찍은 中도 ‘기회 잃을까’ 조바심 절박한 푸틴에 손 내밀어 뒷배 삼은 金 스트롱맨 ‘경쟁-결탁 게임’ 뛰어들 채비
이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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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새 국가방위전략(NDS)은 도널드 트럼프 2기 들어 수행한 네 차례 군사작전을 곳곳에 등장시킨다. 작전명의 철자를 모두 대문자로 써서 강조했는데, 새해 벽두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압송한 ‘확고한 결의(ABSOLUTE RESOLVE)’와 지난해 6월 이란 핵시설을 공습한 ‘한밤의 망치(MIDNIGHT HAMMER)’가 각각 세 차례나 소개된다. 미군의 힘과 속도, 정확성을 언제 어디서든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터프한 지도자’ 트럼프의 구미에 딱 맞췄다.
전광석화처럼 펼쳐진 베네수엘라 작전 성공 직후 ‘트럼프 광신도’로 불리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는 힘(strength)에 의해 지배되고 무력(force)에 의해 지배되며 권력(power)에 의해 지배된다. 이것이 세상의 철칙이다.” 거리낌 없는 힘의 사용은 강대국의 당연한 권리이며, 미국이 지난 80년간 이끌던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규범은 역사의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라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이런 트럼프 2기의 군사적 행동주의는 1기 때와 비교하면 꽤나 낯설다. 과거의 트럼프는 “화염과 분노” 같은 협박을 무수히 날렸지만 종국엔 엄포와 허세로 드러나기 일쑤였다. 트럼프는 누구보다 위험회피 성향이 강했다. 스스로도 ‘새로운 전쟁을 벌이지 않은, 전쟁을 끝내는 피스메이커’임을 자랑하곤 했던 트럼프가 이젠 군사력 사용에 과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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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강렬한 성공에 고무된 걸까. 트럼프는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무력 사용 위협은 물론이고 동맹국 영토인 그린란드의 합병 야심까지 노골화했다. 이젠 이란을 겨누며 대규모 전력을 집결시켰다. 이를 두고 과도한 당 섭취에 따른 일시적 과잉흥분(sugar high) 상태라느니, 더욱 진폭이 커진 트럼프식 판 흔들기라느니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그 가운데 조지 W 부시 시절 국가안보회의 선임국장을 지낸 마이클 싱 워싱턴근동문제연구소장의 포린어페어스 기고문 ‘겁먹은 미국(America the Fearful)’이 눈에 띈다. 겉보기엔 자신감 넘치는 패권국의 모습이지만 실제론 위상 상실과 힘의 쇠퇴에 대한 두려움의 표출이라고 싱은 진단한다. 어쩌면 진부한 ‘미국 쇠퇴론’의 연장선이지만 강대국이 아닌 약소국, 심지어 동맹국까지 괴롭히는 ‘강약약강’에는 미국의 불안한 집단 자아가 담겨 있는 듯하다.
싱의 분석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권력 집중과 대만 통일 집착 이유로 회자됐던 ‘중국 피크(peak China)론’을 상기시킨다. 중국 국력이 이미 정점을 찍은 터라 당장 쇠락에 대한 두려움, 나아가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초조감이 군사적 모험주의를 부른다는 경고는 아직도 유효하다. 쇠퇴와 추락에 대한 공통의 두려움이 강대국 결탁의 시대를 이끄는지도 모른다.
이런 강대국 정치에 누구보다 예민하게 움직인 게 북한 김정은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몰락의 분기점에 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절박한 손을 재빠르게 잡는 승부수를 선보였다. 그 결과 푸틴은 트럼프를 만나기 전에 미리 김정은과 통화해 상의하고, 베이징 열병식에도 김정은이 시진핑과 나란히 설 수 있게 주선한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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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트럼프와 오랜 애증의 브로맨스를 유지해온 김정은으로선 놓치기 아까운 기회다. 미중 대결과 결탁의 게임에 어떻게든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7년 전 판문점 번개처럼 ‘트럼프 쇼’의 들러리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트럼프 친서나 특사 교환 같은 멍석이 깔리기를 기다리는 듯하다. 문제는 김정은의 현란한 생존게임을 우리는 뒷전에서 구경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