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고 파트너, 말의 역사
힘차게 질주하는 말 무리. 말은 고대 세계 문명의 ‘인터넷’이었다. 사진 출처 동아일보DB
광고 로드중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고조선에서 시작된 기마문화
만주와 한반도에 기마의 전통이 유입된 최초의 흔적은 약 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라시아를 호령하던 최첨단 무기인 전차(chariot)가 몽골 초원을 거쳐 만주로 들어왔다. 하지만 너른 평원에서만 효과를 내는 전차의 특성상 실제 전차의 흔적은 현 중국 랴오닝성 서쪽 일대에서만 발견된다.
광고 로드중
샤먼의 도구가 된 마구
마구는 고조선에서 한반도로 들어오면서 샤먼과 함께하는 도구로 성격이 달라졌다. 전차병이 허리춤에 걸어 고삐를 고정할 때 쓰던 고삐걸이와 방울은 샤먼이 흔드는 청동 방울(팔주령 등)로 바뀌었고, 태양처럼 회전하던 전차 바퀴의 이미지는 샤먼의 권위를 상징하는 청동 거울(다뉴경)로 재탄생했다. 말의 이마에 뿔처럼 붙이던 나팔형 청동기도 사용되었지만, 이미 말 자체는 사라진 상태였다.
유라시아의 살벌한 전쟁 기술이 동방의 산악지대에 이르러서는 제의를 위한 성스러운 도구로 승화된 것이다. 사실 한반도는 험준한 산악 지형이 많고 목초지도 많지 않아 실제로 말을 키우기 쉬운 환경은 아니었다. 그러나 신라, 고구려, 부여 등 건국신화에 말이 등장하고, 지금도 굿을 할 때 방울이 필수인 것을 보면 고대부터 말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
주몽의 말과 과하마(果下馬)
말이 실생활의 동반자로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기원전 2세기 위만조선 때다. 우거왕이 한나라에 화해를 청하며 태자와 함께 말 5000필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고구려의 시조 주몽 역시 궁 안에서 말을 돌보는 역할을 했다고 돼 있다.
광고 로드중
그런데 동예는 동해안 지역으로, 실제로 말을 탔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전혀 없다. 이는 아마도 말을 전문적으로 길렀다는 의미일 것이다. 고고학이 밝혀낸 특별한 말의 증거가 있다. 강릉 강문동 유적에서 발견된 말뼈로 만든 복골(불에 그을려 점을 치는 도구)이다. 중국 상나라나 초원의 유목민들도 소나 양의 뼈를 사용했지, 귀한 말의 뼈로 점을 치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재갈이나 안장 같은 마구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즉 동해안 일대는 말을 기르는 종마장과 같은 역할을 했고, 그 뼈를 제사나 점복에 사용할 만큼 귀하게 여겼다는 의미다.
삼국-고려시대 전략자산
복원된 신라의 말 갑옷. 삼국시대 말은 중장기병의 핵심 장비여서 갑옷을 입었다. 사진 출처 동아일보DB
고려시대로 시선을 돌리면 우리는 세계사를 뒤흔든 몽골제국의 말과 마주하게 된다. 몽골의 말은 서양의 미끈한 명마에 비하면 배가 불룩하고 다리는 짧다. 하지만 눈 덮인 초원의 마른 풀뿌리만 먹고도 영하 40도의 추위를 견디며 며칠씩 달릴 수 있다. 극한의 환경을 버텨내는 지구력과 회복력을 갖추도록 수백 년에 걸쳐 체계적으로 개량된 셈이다.
몽골 침략 이후 고려에도 말 목장이 설치되면서 말 사육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몽골은 현 제주를 비롯한 주요 요충지에 원 제국의 직영 목마장을 설치하고 대규모 방목 체계를 도입했다. 특히 1276년 탐라의 다루가치는 우량마를 기르는 목장을 열고 전문 관리인인 목호(牧胡)를 배치했다. 이 과정에서 유목민들의 첨단 말 사육 기술이 한반도에 이식되는 계기가 됐다.
광고 로드중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말은 전쟁터를 넘어 왕권을 상징하며 일상과 문화의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었다. ‘용비어천가’에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탔던 여덟 마리의 명마 ‘팔준’이 등장한다.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 그려진 ‘팔준도’ 속 말들은 전장을 누비는 모습이 아니라 평화롭게 초원에서 쉬는 모습이다. 전쟁을 모두 끝내고 한가로이 쉬는 말을 표현함으로써 정권의 정당성과 왕의 덕을 상징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마패. 마패에 새겨진 말의 수는 암행어사가 행사할 수 있는 공권력의 크기를 뜻했다. 사진 출처 한국문화재사진연구소
이처럼 말은 우리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지만, 동시에 조선에서 말 사육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실록에는 말 역병이 돌아 대량으로 폐사해 역참과 군사 운용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하는 기록이 수차례 등장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나라가 황폐해지면서 만성적인 말 부족에도 시달려야 했다. 쌀농사에 집중했고, 말이 필요한 마을과 도시는 주로 평야에 집중돼 몽골처럼 대규모 목초지를 운영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조선 후기 들어 국력 약화와 함께 더욱 심화됐으니, 말은 곧 국력의 척도였던 셈이다.
AI라는 새로운 야생마
5500년 전 인류가 제어할 수 없는 속도를 지닌 야생마를 길들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인류는 포기하지 않았다. 말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등에 ‘안장’을 얹어 그 야생의 힘을 통제하는 법을 터득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제어하는 순간, 말은 인류 문명의 속도를 바꾼 최고의 파트너가 됐고 세계사를 바꾼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됐다.
지금 우리는 또 다른 거대한 야생마 앞에 서 있다. 바로 인공지능(AI)이다.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속도와 그 파괴력은 수천년의 야생마를 떠올리게 한다. 말의 역사에서 보듯 인류는 언제나 자신보다 강력한 힘을 마주했을 때 도망치기보다 그것을 길들이는 ‘지혜의 재갈’을 만들어 왔다. 새로운 도구에 대한 기대와 공포가 교차하는 지금, 우리에게는 지난 수천 년간 말을 다스려 온 그 지혜가 필요하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