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넘버원’. 엄마가 해주는 밥을 아들이 먹을 때마다 엄마의 머리 위로 뜨는 숫자가 하나씩 줄어든다.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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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
자식이 집밥을 먹을 때마다 엄마의 수명이 줄어드는 설정은 아마도 부모의 고혈을 거머리처럼 쪽쪽 빨아먹고 성장하는 자식의 모습에서 착안한 은유일 거예요. ‘형이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느라 죽었다’는 무의식 속 확신이 엄마가 해주는 밥에 대한 주인공의 공포에 가까운 기피로 이어지기도 했을 거고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흥미진진한 콘셉트가 영화 자체를 잡아먹어 버렸단 사실이에요. 보는 내내 제 생각은 달나라에 가 있었거든요. CJ 햇반에다 맘스쿡 반찬가게에서 사온 반찬으로 밥을 차려주면 숫자는 1씩 줄어들까, 0.5씩 줄어들까, 안 줄어들까? 엄마가 배달의민족으로 시켜준 프라닥치킨을 아들이 먹으면 숫자는 줄어들까, 안 줄어들까? 엄마가 “냉장고 냉동실에 얼려 놓은 밥, 전자레인지로 데워서 먹어” 하고 친구들과 야구장에 놀러가면, 이걸 아들이 먹을 경우 숫자는 0.65만 줄어들까? 반대로 아들이 엄마한테 밥을 해주면 숫자는 1씩 늘어날까? 엄마가 ‘으이구, 밥만 축내는 식충아…’ 하는 원망의 마음으로 아들에게 밥을 해주면 숫자는 0.1만 줄어들까, 안 줄어들까, 늘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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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의미심장한 콘셉트죠? 연애와 결혼은 다르니까요. 법적으로도 명실상부 ‘하나’가 되는 결혼엔 양면성이 있죠. 배우자와 팀을 이뤄 미래를 개척해 나간다는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여는 순간인 동시에, 독립된 개체로 살아온 나 자신을 상실하고 정체성의 대혼돈 속으로 돌진하며 지옥의 문을 여는 모먼트일지도 모르니까요. 마지막엔 홀딱 벗은 남녀가 포옹을 하는데, 서로의 팔이 달라붙고 가슴이 달라붙고 눈알까지 달라붙으면서 마침내 암수한몸 신종 크리처로 진화하는데요. 이런 해괴망측한 과정을 보는 관객은 필시 ‘결혼 포비아’가 될 수밖에 없는지라, 결혼과 출산을 장려해야 하는 대한민국에선 가일층 반동적인 영화로 생각되어요.
[3] 지난해 11월 개봉한 ‘구원자’(15세 이상)는 비록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근저에 깔린 메시지를 충분히 곱씹어볼 만해요. 외과의사인 아버지(김병철)가 아내(송지효)와 아들을 데리고 시골 마을 ‘오복리’로 이사 와요.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아들과 시력을 잃어가는 아내가 마음을 치유할 곳을 찾아왔죠. 독실한 신자인 가족은 이곳에서 세상 모든 고통이 응축된 괴물 같은 얼굴의 할아버지와 조우하면서 기적을 경험해요. 할아버지의 손길이 닿자 아들이 휠체어에서 일어나고 어머니는 앞을 또렷이 볼 수 있게 되는 게 아니겠어요? 그런데 기이한 일이 이어져요. 같은 마을 민재라는 학생이 그때부터 돌연 다리를 쓰지 못하고 앞을 볼 수 없게 되죠.
신의 은총엔 ‘총량’이 있다는 영화의 콘셉트는 나의 행복이 누군가의 불행 위에 쌓아올려진 모래성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만들어요. 어쩌면 신이 설계한 세상은 기쁨과 성공으로 가득 찬 네모 방이 아니라, 희로애락이 불안한 균형을 이루며 제로섬을 목표로 삼는 저울이 아닐까 말이에요. 기적과 저주의 제로섬, 부모 수명과 자식 성공의 제로섬, ‘미장’과 ‘국장’의 제로섬, 코스피와 부동산의 제로섬, ‘중도 확장’과 ‘윤 어게인’의 제로섬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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