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의 약탈자들] 119 구급차 출동 36%가 ‘허탕’… “심정지 대응 10분씩 늦어져” 경미한 부상에도 “구급차 와달라” 미이송 비율 5년새 8%P 늘어
크게 다친 곳이 없고 거동이 가능한데도 119구급차를 부른 남성이 하차를 요구하는 구급대원의 안내에 응하지 않은 채 차량 안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다. 독자 제공
현장에서 응급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1차 수단인 구급차를 이처럼 비응급 상황에도 부르는 사례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119 신고로 구급차가 출동한 횟수는 332만4287건. 그러나 이 중 약 36%인 120만7780건은 출동 이후 이송이 불필요하다고 판단되거나 실제 환자가 현장에 없는 ‘미이송’으로 집계됐다. 전체 구급차 출동 건수 중 ‘미이송’ 비율은 2019년 28%에서 2024년 36%로 늘었다.
현행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구급차는 응급환자나 그 보호자,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이송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출동 전 신고 내용만으로 응급 여부를 가려내기는 쉽지 않아 소방관들은 사실상 모든 구급차 호출 신고에 출동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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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짜 콜택시’ 된 구급차
“못 움직이겠다” “크게 다쳤다” 신고… 현장 가보면 거동 문제없고 찰과상
‘미이송’ 하루 3300건, 거절땐 욕설도… 긴급상황 대응할 인력-시간 줄어
“출동비용 부과 등 제도 정비 필요”
‘미이송’ 하루 3300건, 거절땐 욕설도… 긴급상황 대응할 인력-시간 줄어
“출동비용 부과 등 제도 정비 필요”
● “택시비 아끼려” 구급차 호출
현장의 소방관들은 “119 신고로 황급히 구급차가 출동했다가 별일 없이 복귀하는 경우는 셀 수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서울 동대문소방서에는 “췌장암을 앓고 있는 70대 아버지가 병원에 가야 한다”는 119 신고가 접수됐다. 달려간 구급대원들이 보니 해당 환자는 이동이 가능한 상태였다. 구급대원들이 사설 구급차 이용 등을 안내했지만 정작 환자 가족들은 “돈이 든다”며 거부했다. 현장에 출동했던 한 대원은 “구급차가 아니라 ‘공짜 콜택시’를 부른 것 같았다”고 했다.
실제로 구급차를 택시처럼 이용하는 일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경남소방본부에 따르면 한 70대 남성은 지난 한 달 동안만 네 차례 구급차를 불렀다. 신고 당시에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다”고 했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해 보면 환자의 거동에 문제가 없었다. 반복된 신고에 소방관들이 자제를 호소하자 이 남성은 그제서야 “병원에 가야 하는데 택시비를 아끼려 했다”고 털어놨다. 경미한 사유로 구급차를 호출하는 경우도 잦다. 지난해 전남의 한 소방서에는 “자전거를 타다 다쳤다”는 신고가 접수됐는데, 출동해 보니 신고자인 30대 남성은 무릎에 가벼운 찰과상만 입은 상태였다. 전남 화순소방서 손모 소방관(31)은 “술에 취해 다쳤다며 막무가내로 ‘빨리 와 달라’고 하는 경우도 여전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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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각종 민원도 소방관들이 구급차 탑승을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로 꼽힌다. 한 소방관은 “이송이 불필요해 보여도 ‘왜 태워주지 않느냐’며 욕설을 하거나 나중에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어 결국 태워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에 따르면 2023년 인천에서는 샤워를 하느라 구급차 도착 6분 뒤 나타난 신고자에게 구급대원이 “구급차를 이런 식으로 기다리게 하면 안 된다”고 했다는 이유로 민원이 접수되기도 했다.
● 현장도 “응급환자 대응 골든타임 사라져” 우려
설령 구급차에 신고자를 태운다 해도 생명에 큰 위험이 없는 비(非)응급 출동인 경우가 대다수다. 2024년 119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된 환자는 180만7486명이었지만, 이 중 심한 부상·출혈 등 긴급 처치가 필요한 응급환자는 14.7%인 26만5488명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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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용 부과 및 인식 개선 필요”
현행법상 반복적인 비응급 신고를 해도 신고자를 제재하거나, 출동 비용을 부담시키는 방법은 없다. 국회에 발의된 구급차 관련 법안들도 주로 병원 수용 체계 개선이나 응급의료 인프라 확충에 맞춰져 있다. 이에 대해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응급의료 서비스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서비스인 만큼 비긴급 상황에서는 구급대원이 이송을 거부할 수 있도록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며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비응급 상황에서 구급차를 이용할 경우 비용을 부과하는 방안도 단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장기적으로 ‘구급차는 시민 생명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는 인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채진 목원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응급 신고 기준을 시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반복적으로 안내하고, 학교 교육이나 공공 캠페인을 통해 구급차 이용의 기본 개념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