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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장윤정]길을 잃어버린 ‘국가대표 AI 선발전’

입력 | 2026-02-19 23:12:00

장윤정 산업1부 차장


‘국가대표 AI(인공지능) 선발전’이 길을 잃은 모양새다. 다섯 곳을 뽑아 출발했지만 주요 후보가 중국산 표절 의혹에 휘말렸고, 결국 당초 계획과 달리 두 곳이 탈락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 곳을 더 뽑겠다며 ‘패자부활전’을 예고했지만 정작 참여하겠다는 기업은 없었다. 네이버, 카카오, KT 등 국내 빅테크가 최종 불참하면서 스타트업 중심의 컨소시엄 두 곳만 제안서를 냈다. 글로벌 수준의 AI를 키우겠다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의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

이 혼선은 우연이 아니다. 애초 설계 단계에서 예고된 구조적 문제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민적 관심을 끌어올리고 기업 간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서바이벌식 선발’이라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국가대표 AI’를 가리는 국가 프로젝트 사업에서 탈락은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낙인이 됐다. 기업 입장에선 기술 경쟁이 아니라 평판 리스크를 감수하는 게임이 되어 버렸다. 자유롭게 뛰어들기에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은 판이 된 셈이다.

정부가 평가 잣대로 삼은 ‘프롬 스크래치(From Scratch)’, 완전히 독자적으로 구축한 모델인지를 따지는 기준 역시 논란을 키웠다. ‘타사 모델에 대한 라이선싱 이슈가 없어야 할 것’ ‘해외 모델 미세 조정 등으로 파생된 모델은 국산 모델로 보기 어렵다’란 공지가 제시됐지만, 해외 오픈소스를 어디까지 참고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없었다. 국가 사업에서 모호성은 곧 리스크다.

여기에 ‘오락가락’ 룰이 불신을 더했다. 정부는 처음엔 5개 팀 중 1곳만 탈락시킨다고 했지만 2곳을 탈락시켰다. 그러더니 바로 “1곳을 추가 선발해 4개 팀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룰이 흔들리고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 선발전에서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이 과연 얼마나 무게를 가질 수 있을까.

물론 정부의 고민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 국가 차원의 AI 패권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한국 역시 상징적 프로젝트가 필요했을 것이다. 국민적 관심을 끌어올리기 위해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예능과 같은 ‘서바이벌’ 카드를 꺼내 든 이유가 그것일 테다. 우리 AI 모델의 경쟁력을 대중에게 하루빨리 입증하려는 조급함도 이해한다. 하지만 신뢰가 없는 국가대표는 국민의 인정을 받을 수도, 글로벌 시장에서 제대로 활약할 수도 없다.

2차 평가를 앞둔 지금이라도 숨 고르기에 나설 때다. 국가대표 AI 선발은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다. 차분하게 지금의 혼선이 빚어지게 된 원인을 복기하며 ‘본궤도’를 되찾기 위한 정교한 재설계가 필요하다. 공정성 확보를 위해 기존 2차 진출팀과 추가 선발팀 간의 평가 일정과 조건은 어떻게 설정할지, 독자성 이슈가 다시 불거질 때 검증 기준을 어떤 수준으로 통일할지 더 투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국가대표 AI를 뽑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AI가 진짜 국가대표로 인정받는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조급함이 아니라 신뢰다.




장윤정 산업1부 차장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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