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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헌재]공포 이겨낸 최가온과 린지 본

입력 | 2026-02-18 23:12:00

이헌재 스포츠부장 


‘무서움(Fear).’

레너드 코페트(1923∼2003)가 쓴 ‘야구란 무엇인가’의 첫 문장은 위의 낱말 하나로 시작한다. 야구 명저로 꼽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무서움이야말로 야구라는 경기를 설명하는 첫 번째 화두가 돼야 한다. 타자는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최선으로 공을 때리려는 욕망과 피하려는 본능의 억제 사이에서 싸운다”고 썼다.

하지만 야구의 두려움은 겨울올림픽 종목 선수들이 감내해야 하는 원초적인 무서움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일반인이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는 아파트 10층 높이로 떠올라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는 하프파이프, 50m 높이에서 공중회전을 하는 빅에어 등이 대표적이다. 시속 140km 이상 속도로 깎아지른 듯한 슬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알파인 스키는 또 어떤가. 말 그대로 ‘삐끗’하는 순간 온몸이 부서질 수 있는 종목들이다.

두려움 이겨낸 K여고생들

여고생 스노보더 최가온과 유승은이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에서 딴 메달은 바로 그 공포를 이겨낸 산물이다. 18세 동갑내기인 둘은 일반인은 엄두도 내기 힘든 퍼포먼스를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보란 듯이 해냈다.

최가온이 금메달을 딴 13일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최가온은 1차 시기 두 번째 점프에서 스위치 백사이드 1080을 시도하다가 파이프에 얼굴부터 떨어지며 크게 넘어졌다. 최가온조차도 “어디 한 군데 부러진 줄 알았다”고 말할 정도로 충격이 컸다. 공포를 딛고 2차 시기에 나선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3차 시기에서 최가온은 다섯 개의 점프를 모두 성공시키며 역전 우승했다.

최가온의 ‘인간 승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4년 1월 그는 스위스 락스에서 열린 국제스키·스노보드연맹(FIS) 월드컵 대회에서 고난도 공중 기술을 연습하다가 척추가 골절됐다. 다음 한 시즌을 통으로 날릴 정도로 큰 부상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두 번 다시 그곳을 쳐다보기도 싫었겠지만 최가온은 다시 부딪치는 쪽을 택했다. 몸이 낫자마자 락스에서 집중 훈련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1월 같은 곳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정상에 올랐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최가온의 서사는 어쩌면 그때부터 이미 예고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유승은 역시 2024년 11월 월드컵 대회에서 복사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1년간의 재활 끝에 복귀한 훈련에서 이틀 만에 손목이 부러졌다. 이어지는 불운을 딛고 유승은은 10일 스노보드 빅에어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특히 2차 시기에는 연습 때도 한 번 성공한 적 없던 프런트사이드 1440을 깔끔히 성공시켰다.

메달이 아니어도 실패는 아니다

둘의 성공은 결과론적인 얘기다. 올림픽 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인 것은 아니다. 올림픽 알파인 스키 최고령 메달에 도전했던 ‘스키 여제’ 린지 본(42·미국)은 8일 여자 활강 레이스 도중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닥터 헬기에 실려 병원으로 이동되면서 본이 울부짖는 소리에 많은 이들이 머리를 감싸안았다.

실패로 보일 수 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본은 이후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기문과 충돌하면서 균형을 잃었는데 겨우 5인치(약 13cm)가 메달과 부상을 가른 차이라고 했다. 간발의 차로 기문을 피했다면 메달을 딸 수 있었다는 뜻이다.

본은 “인생처럼 스키도 위험을 감수한다. 때로 꿈을 이루지 못할 수 있지만 도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인생의 아름다움”이라며 “도전하지 않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우리 인생에서 유일한 실패는 도전조차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설 연휴가 끝나고 새해가 시작됐다. 과거를 딛고 새 마음으로 무언가에 도전하기에 딱 좋은 시기다. 



이헌재 스포츠부장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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