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법안 공포 2년 뒤부터 대법관을 1년에 4명씩, 총 12명 증원한다는 것이다. 대법관 전체 수는 현재의 14명에서 26명으로 늘게 된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달 안에 본회의에서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1988년 대법관 정원이 14명으로 정해진 후 38년 만에 사법부에 대변화가 임박한 상황이다.
여당은 대법관 1명당 연 3000건이 넘는 사건을 맡을 정도로 업무가 과중해 상고심이 신속하고 충실하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을 대법관 증원의 명분으로 내세운다. 이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할 방안도 마땅치 않다. 1981년부터 9년간 시행됐던 상고허가제는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과 함께 폐지됐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는 대법관들의 상고심 부담을 줄이기 위해 상고법원 신설을 추진했다가 사법농단의 단초를 제공했다. 이런 이유로 법조계에서도 대법관 증원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문제는 증원 규모와 속도다.
대법원은 대법관을 대폭 늘리면 하급심이 취약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대법관 12명이 늘어나면 추가로 100명가량의 재판연구관이 필요하게 되고, 중견 판사들이 대거 대법원으로 옮겨가면 1·2심 재판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게 대법원의 논리다. 또 법조계 안팎에선 현재 법안대로라면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 중에 대법관 26명 중 22명을 임명하게 돼 대법관 성향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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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역시 반대 의사를 수차례 밝혔을 뿐, 대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2023년 대법원이 ‘상고심사제 도입을 전제로 대법관 4명 증원’을 꺼낸 것처럼 현 대법원도 자체 방안을 내놔야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하다. 민주당도 2월 중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을 무리하게 강행해선 안 된다. 이제라도 대법관 증원 규모와 속도를 놓고 제대로 된 숙의를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