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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동 정책에 고용노동직 채용 18배로… 공시생들 “갈아타자”

입력 | 2026-02-14 01:40:00

[위클리 리포트] 역대 최대 규모 고용노동 공무원 채용
노동입법 늘며 노동감독관 수요↑… 공무원 고용노동 직류 채용 820명
역대 최대… 노량진 수험가도 술렁… 응시 분야 직류 바꾼 지원자 급증
정권 성향 따라 채용 인원 달라져… 일반행정-교정직 등 타 직류 축소
노동직 과잉 배치-부실 교육 우려… “처우 개선하고 단계적 증원해야”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의 한 공무원시험 준비 학원에서 학생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올 들어 국가직 공무원 공개채용에서 고용노동 직류 채용 인원이 대폭 늘면서 공시생이 이곳으로 몰리고 있다. 동아일보DB

“3년간 교육행정 직류로 시험을 준비했는데 이번에 고용노동 직류로 갈아탔어요.”

10일 만난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 하모 씨(32)는 공무원 시험 신청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공무원 채용은 큰 틀에서 행정, 공업, 교정 등 ‘직렬’로 나뉘고 이를 업무 분야별로 세분화한 ‘직류’(일반행정, 교육행정, 고용노동 등) 단위로 선발한다. 임용 이후 담당할 행정 영역을 구분한 것으로 직류에 따라 시험 과목과 배치 부서가 달라진다. 시험 준비생 입장에서는 직류를 바꾼다는 건 준비 과정도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 씨가 고용노동 직류를 택한 건 최근 공무원 채용 인원 변경 때문이다.

올해 국가직 공무원 공개채용에서 고용노동 직류 채용 인원이 이례적으로 대폭 늘었다. 하 씨는 “고용노동 채용 인원이 늘어난다는 정부 발표가 나온 지난달 마침 경남 고향 집에 있었는데 가족들과 직렬별 채용 정원을 살펴보고 바로 과목을 바꾸기로 했다”며 “합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지만 막상 적성에 맞을지, 일을 잘할 수 있을지는 걱정”이라고 말했다.

● 사상 최대 고용노동 직류 채용

13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6일 서류 접수가 마감된 국가직 9급 고용노동 직류 일반전형에는 6172명이 지원했다. 지난해 같은 전형 지원자(775명)보다 696% 증가한 수치다. 장애인·저소득 전형을 포함하면 올해 9급 고용노동 직류 지원자는 6467명에 달한다.

이처럼 고용노동 직류 지원자가 늘어난 건 올 초 정부가 해당 직류 채용 인원을 대폭 늘렸기 때문이다. 지난달 2일 인사혁신처는 올해 국가직 고용노동 직류 7급과 9급을 일반·장애인·저소득 전형을 합해 총 820명 선발한다고 발표했다. 2018년 고용노동 직류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채용 규모다. 지난해 고용노동 직류 전체 선발 공고 인원(46명)의 18배에 달한다. 고용노동 직류 9급 일반 전형 채용 규모만 해도 546명이다.

큰 폭의 인원 변동에 수험가는 즉각 반응했다. 공무원 시험 전문업체인 공단기에 따르면 지난달 정기 모의고사에서 9급 고용노동 직류 과목을 선택해 시험을 치른 학생이 지난해 같은 달 대비 5.6배로 늘었다. 하 씨처럼 많은 수험생이 고용노동 직류로 갈아탔기 때문이다.

공무원 시험 준비 학원들이 집결해 있는 서울 노량진 인근에서는 한때 고용노동 직류 수험서가 동이 나기도 했다. 한 공시생은 “채용 규모 발표가 있었던 이튿날 곧장 오전에 곧바로 노량진 서점에 갔는데 이미 고용노동 직류 수험서가 다 없어졌더라”며 “인터넷 서점에도 일시적으로 품절이 되어 결국 주문하고 열흘쯤 뒤에야 새로 입고된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시생은 “최근에 고용노동 직류 수업을 듣다가 강사가 ‘채용 규모를 확인한 뒤 고용노동 직류로 옮긴 사람이 있냐’고 묻자 강의실에 있던 공시생 중 거의 절반 가까이가 손을 들어서 깜짝 놀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고성훈 공단기 교육연구소 소장은 “지난해 고용노동 직류 9급 일반전형은 결시자를 제외하고 515명이 실제 시험을 치렀다”며 “올해는 그 응시자보다도 31명 많은 수를 뽑는 셈이니 공시생들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노동감독관 수요 급증 영향

정부가 고용노동 직류 채용을 대폭 늘린 가장 큰 이유는 노동감독관(옛 근로감독관)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다. 노동감독관은 임금 체불, 산업재해, 부당해고, 직장 내 괴롭힘 등 노동관계법 위반 여부를 현장에서 조사·감독하고, 위법 사항에 대해 시정 지시나 사법 처리까지 담당하는 공무원이다.

올해 3월 10일부터 하청업체 노조원들이 원청에 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법)이 시행되는 데다 근무시간 외 업무 지시를 제한하는 이른바 ‘퇴근 후 카톡 금지법’도 상반기 중 입법이 추진되는 등 노동 관련 입법이 잇따르면서 노동감독관의 수요가 크게 늘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현장에서 법 적용 여부를 판단하고 집행해야 하는 데다 새로운 노동 입법으로 노사 간 분쟁과 민원이 늘어날 가능성도 커진 탓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신년사에서 노동감독관 증원 필요성을 언급하며 “안전한 작업환경과 생명 존중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고용노동 직류의 대규모 선발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말 노동감독관 인력을 2024년 3131명에서 매년 1000명씩 늘려 2026년 5131명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2028년까지 노동감독관을 총 1만 명 수준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감독 대상 사업장 점검 물량도 현재 연 5만 곳에서 올해 9만 곳, 내년에는 14만 곳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전체 사업장의 약 7%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를 위해 현재 노동부에서 근무하는 인력 중 일부도 노동감독관으로 배치되는 등 인력 이동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국가공무원 채용 규모를 발표하기 전에 부처별로 수요조사를 받는다”며 “올해도 노동부에서 제출한 내용을 바탕으로 검토해 인원을 확정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 정권 親노동 성향 따라 출렁인 채용 인원

고용노동 직류 채용 규모는 정권 교체에 따라 큰 폭의 변동을 반복해왔다. 문재인 정부 시기(2018∼2022년)에는 친노동 정책 기조 아래 노동감독이 강화돼 7·9급 고용노동 직류 공채 규모가 연평균 596.6명에 달했다. 당시 정부는 5년간 노동감독관 1000명 증원 계획을 추진했다.

반면 윤석열 정부 시기인 2023∼2025년에는 연평균 채용 인원이 71.7명으로 급감했다. 당시 노동시장 규제 완화 기조 속에서 노동감독 인력 확충이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밀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현 정부 들어서는 다시 노동정책에 무게가 실리며 증원이 추진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산업재해 예방 강화, 반복적 임금 체불 사업장 집중 관리, 직장 내 괴롭힘 대응 강화를 국정 과제로 제시했다.

다만 채용 규모가 단기간에 크게 바뀌면서 수험 현장에서는 혼란이 거듭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오랜 기간 시험을 준비해온 장수생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예고 없이 채용 인원이 급변하면 직류 선택 자체가 당락을 가르는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채용 급증에 현장에선 “부실 교육” 우려도

다른 직류 채용이 줄어든 데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올해의 전체 국가공무원 채용 계획 규모는 5351명으로 지난해 5272명 대비 소폭 늘었지만, 고용노동 직류를 제외한 선발 규모는 5226명에서 4531명으로 줄었다. 지난해에는 전체 채용 규모 중 고용노동 직류가 차지하는 비중이 0.9% 수준이었는데 올해는 15.3%로 급증한 결과다. 특히 지난해에 981명을 뽑아 단일 직류 중에 채용 규모가 가장 컸던 9급 일반행정 일반 전형은 올해 524명으로 줄었다. 산림자원 직류 9급 일반 전형 모집 인원은 지난해 116명 채용에서 올해는 31명으로, 9급 교정직은 665명에서 241명으로, 9급 교육행정은 31명에서 21명으로, 9급 출입국관리직은 134명에서 29명으로 줄었다. 이들 직류가 담당해온 행정 업무에서는 그만큼 신규 충원 인력이 줄어든 셈이다.

고용노동 직류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당장 노동 분야 행정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고 대규모 채용이 이뤄졌지만, 실제 현장 수요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 인력이 과잉 배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권 교체 등 정책 기조 변화에 따라 다시 채용이 축소되면 단기간에 늘어난 인력이 ‘찬밥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장에서는 급격히 늘어난 고용노동 직류 채용으로 교육이 부실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금 체불이나 산업재해 은폐, 부당해고,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발생한 사업장을 찾아 노사 갈등의 한가운데서 조사와 판단을 해야 하고, 민원과 항의에 상시적으로 노출되는 노동감독관은 고강도·고위험 업무로 꼽힌다. 이 때문에 충분한 교육과 현장 실습이 필수적이다. 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신규 공무원은 선배로부터 실무를 배우는 도제식 훈련이 필수적인데 이것이 이뤄지지 않은 탓에 자칫 ‘준비되지 않은 공무원’이 현장에 투입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동부에서도 신규 임용된 노동감독관 교육을 위해 ‘수사학교 과정’을 신설하는 등 여러모로 대비를 하고 있긴 하지만 워낙 채용 규모가 크기 때문에 교육 과부하가 걸릴 수 있다는 내부 우려가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이들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거나 중간에 다른 직류로 이전한다면 그동안의 교육과 새로 사람을 뽑는 데 드는 비용 등은 모두 세금의 부담으로 전가된다.

● “공무원 특성상 한번 늘리면 줄이기 어려워”

전문가들은 단순한 인원 확대보다 제도적 보완이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 교수는 “노동감독관 등 고용노동 직류는 업무 강도가 높아 충분한 정보와 준비 없이 현장에 투입될 경우 조기 이탈이 잇따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며 “악성 민원으로부터 노동감독관을 보호할 장치와 합리적인 업무 배분 시스템이 먼저 갖춰져야만 증원이 실제 행정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공무원 채용 규모를 장기적인 흐름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 수는 한번 늘리면 줄이기 어렵다”며 “정책 수요가 있더라도 점진적으로 늘리고 효과를 점검하면서 조정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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