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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영]폐섬유증 60대 환자의 스위스行

입력 | 2026-02-11 23:18:00


폐섬유증을 앓고 있는 60대 남성이 10일 가족 몰래 조력사를 하기 위해 스위스로 가려다 인천공항에서 제지당하는 일이 있었다. 이 남성은 “아버지가 조력사를 위해 출국하려는 것 같다”는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한 경찰을 “그냥 여행 가는 것”이라는 거짓말로 돌려세웠으나 “유서 형식의 편지를 발견했다”는 가족의 두 번째 신고 전화를 받은 경찰이 항공기 이륙까지 늦춰가며 설득하자 출국을 포기했다. 남성을 태운 비행기가 이륙하기 15분 전이었다.

▷스위스는 의사의 도움을 받아 환자 스스로 약물을 투여해 사망하는 ‘조력 자살’을 외국인에게도 허용하는 유일한 나라다. 존엄한 죽음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조력사를 위한 스위스행에 대한 관심도 높다. 조력사를 선택한 사람들의 스위스 여정을 담은 책들이 여럿 출간됐고, 스위스 조력사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도 흥행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스위스의 4개 조력사 단체에 가입한 한국인이 300명이 넘는다. 가입한 사람들은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위안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스위스에서 조력사한 한국인은 10명 남짓으로 추정된다. 죽음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고, 결심했다 해도 가족을 설득해야 하며, 설득했다 해도 동행한 가족이 자살방조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을 각오해야 한다. 남유하 작가는 말기 암 환자로 고통에 몸서리치는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인 스위스행에 동행했다. 한국에 돌아와 주민센터에 사망 신고를 하며 장소를 스위스로 적었더니 직원이 “안락사하셨느냐”고 물었고 엄마의 죽음에 대해 거짓말하기 싫어 “맞다”고 했지만 경찰에 신고당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해외에서도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조력사를 진행하는 것이 윤리적이냐는 논쟁이 제기되곤 한다. 지난해 10월엔 영국의 40대 남성이 가족에게 파리 여행을 간다고 속이고 스위스에 가서 조력사한 일이 있었다. 귀가하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다 뒤늦게 아들 통장에서 조력사 단체로 1만5000달러(약 2200만 원)가 빠져나간 사실을 확인한 어머니는 단체에 항의한 후에야 유해 발송 계획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헌법재판소는 조력사를 허용해 달라는 헌법소원 사건을 심리 중이다. 하반신이 마비된 회복 불능의 척수염 환자가 조력사를 하러 스위스로 가려다 간병을 맡아온 딸이 동행할 경우 자살방조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마음에 걸려 청구한 사건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할 우려가 있다” “환자 생명을 구하는 것을 본질로 하는 의료 윤리에 배치된다”는 의견서를 냈다. 헌재가 “현대판 고려장이 될 것”이라는 반대 의견을 무릅쓰고 마지막 인권으로서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인정할지 주목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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