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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 속에서도 빛난다… ‘쿼터 집업’으로 조용한 럭셔리 드러내

입력 | 2026-02-11 00:30:00

[패션 NOW]
샤넬 새 시즌, 쿼터 집업 전면에
남성 직장인 넘어 여성-10대에도 인기
무대 아닌 일상서도 어우러지는 ‘콰이어트 럭셔리’ 트렌드 지속



캐주얼 상의로 사랑받는 하프 집업이 일상에 스며든 럭셔리를 뜻하는 ‘콰이어트 럭셔리’ 트렌드를 상징하는 아이템으로 각광받고 있다. 샤넬(왼쪽 사진)이 올해 컬렉션 무대의 포문을 쿼터 집업으로 연 것을 비롯해 로에베(가운데), 센디 리앙 등 여러 럭셔리 브랜드가 하프 집업 상의를 선보이고 있다. 각 사 제공


2024년 샤넬의 패션 부문 수장으로 발탁된 마티외 블라지의 2026년 샤넬 공방 컬렉션의 무대는 폐쇄된 미국 뉴욕의 지하철 바워리 역이었다. 전통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데 탁월하다고 평가를 받아온 그는 관습적인 런웨이가 아닌 현대인의 삶의 공간과 어우러지는 럭셔리를 표현했다. 블라지는 “뉴욕의 지하철은 각기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공간”이라며 “더없이 자유로운 플랫폼을 배경 삼아 뉴욕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컬렉션의 메시지는 오프닝 룩에서부터 드러났다. 런웨이의 포문을 연 건 샤넬의 상징과도 같았던 트위드 재킷이 아닌 베이지색 쿼터 집업 차림의 모델이었다. 집업 스웨터에 청바지를 입은 채 플랫폼 앞에 선 절제된 인상의 모델은 현시점의 럭셔리가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쿼터 집업은 네크라인에서 가슴선까지 지퍼로 여닫는 하프 집업 형태의 니트 혹은 스웨트셔츠다. 본래 하이패션과는 거리가 먼 옷이다. 1930년대 기능성을 앞세운 스포츠웨어에서 출발해 1970년대 레저 문화와 함께 대중에게 흡수됐고, 1990년대에 이르러선 셔츠 위에 겹쳐 입는 비즈니스 캐주얼 문법으로 자리 잡으며 보수적인 중년 남성들의 옷장에 정착했다.

하지만 최근 쿼터 집업을 향한 시선은 분명 과거의 것과 다르다. 변화는 작년 겨울, 틱톡에서 감지됐다. 말끔한 쿼터 집업 차림으로 말차를 마시는 한 크리에이터의 숏폼 영상이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quarterzipwinter(쿼터 집 윈터), #quarterzipmovement(쿼터 집 무브먼트) 같은 해시태그가 붙은 영상들이 연이어 인기를 끌며 패션 담론의 중심에 서게 됐다. 이는 급변하는 유행 속에서 변치 않는 지속성을 중시하는 콰이어트 럭셔리(Quiet Luxury)의 한 흐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비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의 일만은 아니다. 이미 몇 시즌 전부터 패션하우스들은 쿼터 집업을 런웨이에 올리며 조용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일례로 샌디 리앙은 2025년 가을겨울(FW) 시즌 컬렉션에서 단정한 셔츠와 스커트 룩에 집업 스웨트셔츠를 더해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옷차림에 리듬감을 부여했다. 지퍼를 느슨하게 풀고 소매를 돌돌 말아 올린 스타일링이 한층 생동감을 더했다. 같은 시즌 토리 버치는 비비드한 색감의 스웨트셔츠와 코트를 믹스 매치해 컬러 대비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에너지를 발산했다. 칼라를 목 끝까지 세워 여미는 의도적인 연출로 캐주얼 룩에 긴장감을 부여하며 포멀과 캐주얼의 경계를 흐트러뜨렸다. 편안함과 실용성을 전제로 한 니트웨어가 스타일링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한 셈이다.

이번 시즌 패션 하우스들은 쿼터 집업을 단순한 캐주얼웨어로 다루지 않는다. 로에베는 쿼터 집업을 여러 겹 겹쳐 입은 듯한 착시 효과의 톱으로 집업이라는 형태 자체를 하나의 디자인 재료로 활용했다. 미우미우는 보편적인 스웨트셔츠에 여성 노동자의 옷차림을 상징하던 앞치마를 덧입혀 오랫동안 저평가돼 온 여성 노동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겼다. 한편 슈슈통과 맥캔디는 쿼터 집업을 보다 가볍고 경쾌한 무드로 풀어낸다. 집업 톱에 톡 튀는 셔츠 드레스, 프릴 스커트, 롱 삭스, 샌들 힐 등 로맨틱한 아이템을 매치해 소녀적인 감성을 덧입혔다. 반면 빅토리아 베컴은 보다 절제되고 성숙한 무드를 지향한다. 폴로 셔츠 위에 쿼터 집업 니트 스웨터를 레이어드하고 정제된 라인의 맥시 스커트를 매치해 쿼터 집업을 오피스웨어로 격상시켰다.

‘아저씨 니트’로 불리던 쿼터 집업은 더 이상 특정 세대나 라이프스타일에 국한된 옷이 아니다. 스트리트 신을 넘어 클래식의 정수로 여겨지는 샤넬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변주되며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럭셔리가 어디까지 일상에 스며들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내놓으려는 디자이너들의 고민이 지극히 평범해 보였던 쿼터 집업으로 나타나고 있다.



안미은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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