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신속 등재’ 도입 1년 불구 신약 접하는 시간 OECD 하위권 ICER 기준 과거와 동일하게 적용…허가∼협상에 2년 넘게 걸리기도 英 등 해외선 별도 평가방식 운영
병원에서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들. 글로벌 동시 출시가 보편화된 혁신 신약이 국내 환자에게 도달하기까지는 여전히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DB
글로벌 제약사들이 신약을 출시한 뒤 1년 안에 각국에 공급하는 흐름이 보편화되고 있지만 한국은 이 흐름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에 따르면 글로벌 최초 출시 후 1년 내 국내에 도입된 신약 비율은 OECD 평균이 18%인 반면 한국은 5%에 그친다. 건강보험 급여 적용 비율 역시 한국은 22%로 OECD 평균(29%)보다 낮아 글로벌 동시 출시 시대에 맞는 급여·평가 구조로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00일 신속 등재’의 한계…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평가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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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현장에서는 절차 단축만으로는 실질적인 접근성 개선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허가되는 신약들은 특정 바이오마커를 가진 소수 환자를 대상으로 하거나 대체 치료제가 거의 없는 희귀·중증질환 치료제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치료제는 환자 수가 적어 임상시험 규모가 작고 완치보다는 질병 진행 억제나 삶의 질 개선이 치료 효과의 핵심 지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런 특성이 현재의 평가 체계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존 기준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신속한 검토가 오히려 ‘신속한 탈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환자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사회·경제적 부담을 얼마나 완화할 수 있는지와 같은 요소 역시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평가 과정에서는 부차적인 요소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ICER란 무엇인가… 왜 희귀·중증질환에 불리한가
한국의 약가·급여 결정에서 핵심 지표로 활용되는 것이 ICER(점증적 비용-효과 비율)다. ICER는 새로운 치료제가 기존 치료에 비해 얼마나 더 효과적인지를, 그 효과를 얻기 위해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으로 나눈 값이다. 쉽게 말해 ‘효과 1을 더 얻기 위해 얼마를 더 지불해야 하는가’를 따지는 계산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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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절차를 아무리 단축하더라도 ICER 기준선을 과거와 동일하게 적용하면 급여 등재 문턱을 넘기 어려운 구조가 반복된다. 실제로 허가·평가·협상을 병행하는 ‘허평협’ 시범사업에서도 평균 등재 소요 기간은 약 14개월에 달했고 일부는 2년 이상 걸렸다. 이는 절차 문제가 아니라 평가 기준이라는 구조적 제약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해외 주요 국가는 다른 접근을 택하고 있다. 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원(NICE)은 중증질환의 경우 ICER를 단일 기준으로 적용하지 않고 불확실성이 큰 질환군에는 별도 평가 방식을 운영한다. 프랑스 고등보건청(HAS) 역시 질환의 중증도와 치료제의 추가적 임상 가치를 함께 고려해 평가 강도를 달리한다.
이종혁 중앙대 약학대 교수는 “글로벌 약가 비교가 강화되는 환경에서는 약가 수준뿐 아니라 각 국가의 평가 기준 유연성이 신약 출시 전략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며 “ICER 기준이 경직된 국가는 글로벌 신약 출시에서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산업 경쟁력의 문제를 넘어 국내 환자들이 최신 치료 기회를 제때 누리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신약 접근성 개선은 ‘시간을 줄이는 문제’와 ‘기준을 바꾸는 문제’를 동시에 다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절차 단축은 출발점일 뿐이다. 신약의 임상적·사회적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평가 기준이 마련될 때 비로소 실질적인 접근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희귀·중증질환 환자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전향적인 정책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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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