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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9·19 군사합의 또다시 ‘문제없다’ 말 바꿀건가[윤상호 군사전문기자의 국방이야기]

입력 | 2026-02-09 23:06:00

9·19 남북군사합의의 전면 효력 정지 발표 20여 일 뒤인 2024년 6월 26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에서 해병대의 천무 다연장로켓이 해상 실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 체결 당시 군 안팎에선 안보 공백이 초래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군사분계선(MDL) 일대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되고, 최전방의 실사격과 기동 훈련이 중지되면 우리 군의 대비태세가 현저히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 군 지휘부는 “대체 수단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별문제 없다”면서 합의 체결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 북한의 오물풍선 테러 등 잇단 도발에 대응해 2024년 6월 9·19 합의의 효력을 전면 정지하는 과정에서 군은 “그간 9·19 합의 때문에 대북 감시 정찰과 대비태세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말을 바꿨다. 같은 합의를 두고 정권에 따라 군의 평가가 오락가락한다는 쓴소리가 이어졌다. “군이 9·19 합의의 맹점을 알고도 국민에게 쉬쉬한 것 아닌가”, “정권 이념 기조에 맞춰 말이 달라졌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군 관계자는 “어떤 변명을 해도 국방을 책임지는 주체인 군이 스스로 신뢰성에 상처를 낸 뼈아픈 사례”라고 지적했다. 9·19 합의는 우리 군의 최전방 작전과 훈련, 감시체계 등 대비태세 전반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중대 사안이다. 그에 대한 평가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손바닥 뒤집듯 한다면 야전의 지휘관과 장병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대비태세를 유지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9·19 합의 복원을 공약했던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후 9·19 합의의 선제적, 단계적 복원 방침을 누차 강조해 왔다. 최근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비행금지구역의 선(先)복원부터 북한에 먼저 제안하는 방안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간 긴장 완화와 우발적 충돌 방지라는 정책 목표를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9·19 합의 복원에 따른 군사적 부작용을 도외시한 채 군이 또다시 “합의를 복원해도 대비태세에는 문제가 없다”는 식의 평가를 내놓는다면 국민은 어떻게 생각할까.

9·19 합의가 복원될 경우 다시 설정될 비행금지구역은 최전방의 대북 감시와 정찰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군 무인기와 정찰기의 운용이 제한되면서 북한의 장사정포와 미사일의 도발 징후 등을 실시간으로 포착하는 데 공백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최전방의 사격 훈련과 야외 기동 훈련 중단도 대비태세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훈련 규모가 축소되고 횟수가 줄어들면 병사들의 숙련도는 떨어지고, 유사시 지휘관들의 결심 능력도 무뎌질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군 당국자는 “같은 합의를 두고 군이 연거푸 말을 바꾼다면 북한에 오판의 빌미를 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합의 복원 후 북한의 간 보기식 도발에 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안의 본질은 9·19 합의 그 자체보다도, 군이 정권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구조라고 필자는 본다. 군의 최전방 경계와 대비태세 기조는 어느 정권에서도 일관돼야 할 것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북한 위협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9·19 합의 체결 이후로도 북한의 합의 위반 사례는 숱하게 많았고,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시시각각 고도화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9·19 합의에 대한 군의 평가와 설명이 정권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면 국방과 안보 정책의 신뢰도는 금이 갈 수밖에 없다.

안보와 국방의 최전선을 지키는 군은 군 통수권자(대통령)의 공약이나 정부의 대북 기조에 위험한 요소가 있다면 직언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자 국민에 대한 기본적인 도리일 것이다. 과거에는 괜찮다고 했다가 정권이 바뀌자 문제가 많았다고 말하고, 다시 정권이 교체된 뒤에는 또 괜찮다고 번복하는 군의 태도는 국민에게 신뢰받기 힘들다.

국민적 공분을 산 12·3 비상계엄의 준비와 실행 과정에서 군 지휘부 어느 누구도 이를 제지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비뚤어진 최고권력자가 불법적 계엄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상명하복의 그늘에서 침묵하고 수수방관한 군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이다.

9·19 합의 복원 과정에서도 군은 맡은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본다. 9·19 합의 복원의 부작용을 철저히 파악해서 북한의 상응 조치 등 보완책이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으면 최대한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직언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안위와 직결되는 대비태세의 기준은 정치가 아니라 위협이어야 한다. 이것이 오락가락하면 훗날 그 대가는 우리 장병과 국민이 치른다는 점을 북한의 도발 역사가 말해 준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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