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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대작에는 대개 목적이 있다. 시대의 작품들과 경쟁해야 하고, 청중과 평단의 비평을 의식해야 한다. 때로는 작곡가 자신의 야심까지 담아야 한다. 작품은 완결되어야 하고, 구조는 설득력을 가져야 하며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이 작품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말해주어야 한다. 그 안에서 작곡가는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다듬고, 음악적으로 설명한다. 진심이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 진심은 이미 한 차례 정돈된 형태로 제시된다.
반면 소품은 대체로 짧고, 작고, 부차적인 작품으로 취급된다. 프로그램의 중심이 되기보다는 사이에 끼어 있고, 앙코르로 연주되거나 음반의 마지막 트랙에 놓이기 쉽다. 하지만 여기서 소품의 본질이 드러난다. 오히려 소품은 무언가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음악이다. 작곡가가 자신의 위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반드시 음악사적 의미를 확보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다. 이 자리에서는 실패보다 솔직함이 더 중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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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이 짧은 음악들이 유난히 사람의 말처럼 들린다는 점이다. 대작에서는 음악이 나아가야 할 길이 비교적 분명하다. 시작이 있고, 거쳐야 할 지점이 있으며 도착해야 할 결론이 있다. 하지만 소품은 그렇지 않다. 감정은 꼭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도 되고 어느 방향으로 정리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머물러도 된다. 작곡가는 이 순간에 무엇을 주장하기보다 굳이 결론을 정하지 않은 채 그 감정을 그대로 두는 쪽을 택하기도 한다. 그 머뭇거림이야말로 누군가의 마음이 실제로 움직이는 방식에 더 가깝다. 정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현실에 가까운 것이다.
이것은 결핍이 아니라 선택이다. 소품에서는 음악이 나아가야 할 길을 미리 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침묵과 여백이 생긴다. 작곡가는 이 여백을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음악은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고 일부러 다음으로 나아가지 않은 채 머문다. 소품이 유독 개인적인 경험으로 남는 이유는 음악이 하나의 길이나 의미를 강요하지 않고 각자의 감각이 머물 자리를 열어두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교향곡에서의 브람스가 감정의 방향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 작곡가라면, 그의 피아노 작품 중 간주곡은 작곡가가 무엇을 굳이 분명히 말하지 않으려 한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는다. 이 음악들은 감정을 정리하거나 규정하지 않는다. 기쁨도 슬픔도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지 않고,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문다. 음악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같은 자리에 잠시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작곡가를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순간이 그들의 가장 작은 작품을 들을 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름이 덜 알려진 곡, 프로그램 노트 한 줄로만 소개되는 작품, 혹은 제목조차 소박한 음악들 속에서 작곡가는 오히려 가장 자신답다. 꾸미지 않고, 주장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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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