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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히 쳐다보는 청년들 vs 피켓 드는 어른들…불만 표현도 다르게[청계천 옆 사진관]

입력 | 2026-02-07 13:00:00

백년사진 No.150




● 질문에 답하지 않고 바라보는 세대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세대 간 불평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AI를 탑재한 로봇과 자동화 시스템이 정신·육체 노동 현장을 빠르게 대체하면서, 기존의 일자리 진입 경로와 사회적 이동의 사다리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젊은 세대는 이 불안과 불만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최근 Z세대의 반응을 설명하는 용어로 ‘젠지 스테어(Gen Z stare)’라는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기성세대의 질문이나 요구에 대해 적극적으로 답하지 않고, 무표정한 응시로 반응을 최소화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정작 당사자들은 이 표현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불만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데 익숙했던 기성 세대

여기서 하나의 오해가 생기기 쉽습니다. 과거처럼 피켓과 구호를 통해 불만과 세력을 가시화하던 세대에 비해, 젊은 세대의 감정이 약해졌다는 인식입니다.

한국의 기성 세대는 사회적 불의와 불합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집단적 행동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3~40년간 한국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해 온 장면은 대규모 집회, 정렬된 대오, 그리고 운율감 있는 여덟 글자 구호였습니다.

2025년 12월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대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동아일보 DB

그러나 최근 미국과 한국의 시위를 함께 놓고 보면, 젊은 세대의 감정이 옅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익숙하게 읽어온 방식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눈에 띄는 구호와 집단 장면만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다른 형태의 긴장과 불만은 쉽게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 미국의 손글씨 피켓 — 각자가 준비해 온 문장들

지난 달 24일 미니애폴리스에선 미국 시민권자인 37세 간호사 알렉스 프레티가 미국 이민국(ICE) 대원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같은 달 7일 같은 곳에서 37세 미국인 여성 르네 니콜 굿이 총격으로 숨진 이후 17일 만에 또다시 일어난 일입니다. 이후 미국 각지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있고 그 이미지들이 한국으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시위에서 우리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대체로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들고 있는 피켓이 각양각색입니다. 참가자들은 미리 인쇄된 문장을 나눠 받기보다, 종이와 펜을 준비해 스스로 문장을 씁니다.

지난 달 30일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에서 수천 명의 시위대가 행진하며 미국 이민국(ICE)의 철수를 외치고 있다. AP 뉴시스.

글씨체도, 문장의 톤도, 분노의 강도도 모두 다릅니다. 이 손글씨 피켓들은 조직의 공식 입장문이라기보다, 개인이 거리로 가져온 생각의 조각들에 가깝습니다. 사진 속 장면에는 하나의 구호 대신 서로 다른 언어들이 나란히 놓이고, 그 차이 자체가 장면의 밀도를 만들어냅니다.

● 한국의 피켓 시위 — 정리된 문장으로 드러나는 요구

한국의 집회·시위 문화는 권위주의 정권이라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 형성돼 왔습니다. 그만큼 체계적이고 준비된 방식이 특징입니다. 대기업 노조 시위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빨간 머리띠와 노조 로고가 선명한 점퍼, 동일한 문구가 인쇄된 피켓, 안정적으로 정렬된 대오. 메시지는 한눈에 읽히고, 요구의 방향은 분명합니다.

이 형식은 진보 진영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지난달 31일 보수 정당의 대표였다가 제명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지지자들이 여의도에서 연 집회 역시 유사한 구조를 보였습니다. ‘부당 징계 각오하라’라는 사전 제작된 문구의 피켓을 들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구호를 외쳤습니다.

국민의힘에서 제명된 한동훈 전 대표 지지자들이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앞에서 열린 당 지도부 규탄 집회에서 ‘부당징계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1.31 뉴스1

1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열린 ‘쿠팡 피해자 행동의 날’ 집회에서도 참가자들은 ‘김범석을 처벌하라’는 손피켓을 들고 일사분란하게 구호를 외쳤습니다. 사안과 이념은 다르지만, 표현의 형식만 놓고 보면 세 장면은 닮아 있습니다.

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송파대로 쿠팡 본사 앞에서 열린 쿠팡 피해자 행동의 날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김범석을 처벌하라’는 손피켓을 들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2.1 뉴스1


한국의 시위는 이렇게 인쇄된 문장을 통해 요구를 정리하고, 집단의 입장을 명확히 드러내는 방식으로 축적돼 왔습니다. 사진은 이 구조를 읽기 쉬운 이미지로 전달해 왔습니다.

● 말을 줄인 세대 — 이미지로 잘 포착되지 않는 태도

반면 오늘의 젊은 세대의 감정은 이 세 장면 어디에도 정확히 겹쳐지지 않습니다. 한 곳에 모이지도, 구호를 합창하지도, 인쇄된 문장을 들지도 않습니다. 대신 질문 앞에서 말을 아끼고 상황을 지켜봅니다.

긴장과 고민은 분명 존재하지만, 아직 집단적 장면으로 조직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지로는 쉽게 포착되지 않습니다. 말하지 않는 감정, 응시로 남은 태도를 담아내기에는 사진이 한계를 가집니다. 온라인 게임과 유튜브, 플랫폼을 통한 소통은 늘어났지만, 오프라인에서 집단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그래서 젊은 세대의 분노는 가시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시위를 통해 집단의 요구를 드러내고 관철시키는 방식은 지금의 기성 세대가 마지막일까요. 아니면 젊은 세대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사회에 설득할 새로운 형식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은 미국의 시위 사진과 한국의 시위 사진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백년사진이었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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