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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내가 만난 명문장/강보라]

입력 | 2026-01-25 22:57:00




강보라 성우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문정희 ‘남편’ 중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터스텔라’를 보는 것이 대유행이었다. 팝콘 대신 ‘허니버터칩’을 먹어야 세련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던 시절, 우리도 겨우 예매에 성공해 그나마도 앞뒤로 앉아 영화를 봤다. 최애 감독의 초대박 히트 영화였지만 명성만 한 감동을 챙기지 못한 채 극장을 나섰다.

그러다 얼마 전 우주를 좋아하는 아홉 살 쌍둥이 남매와 나란히 앉아 ‘인터스텔라’를 다시 봤다. 차원을 넘나드는 딸과 아빠의 가슴 절절한 대화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남편은 “너를 구할 수만 있다면 블랙홀이 대수냐”라며 딸을 끌어안고 세리머니를 했다. 부모가 돼 입어보면 더 잘 맞는 옷 같은 영화였다.

젊은 날엔 문정희 시인의 ‘겨울 사랑’이나 ‘비망록’에서 서성거렸다. 요즘은 ‘남편’이라는 시에 자주 머문다.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은/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그래도 저 남자가 없으면 내가 낳은 새끼들에 대한 애틋함을 누구와 같이 공감할지, 내 인생의 굽이굽이는 또 누구와 함께 기억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저 남자”가 우리 편을 구하러 블랙홀에 들어갈 유일한 남의 편이라니!

시절마다 손을 내밀어 주는 문장 몇 개가 있어 그런대로 정신을 차리고 살아간다. 혼자서는 반찬 뚜껑을 못 열어 반찬을 못 챙겨 먹는 남편과 실랑이를 벌이는 일상이 나름대로 귀하게 느껴지는 것도 내 손을 잡아주는 문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좋은 손길을 더 많이 구하려고 책과 신문을 읽고 영화를 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고마운 문장에 기대 결혼 생활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일을 하며 살아간다.


강보라 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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