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보라 성우
―문정희 ‘남편’ 중
광고 로드중
그러다 얼마 전 우주를 좋아하는 아홉 살 쌍둥이 남매와 나란히 앉아 ‘인터스텔라’를 다시 봤다. 차원을 넘나드는 딸과 아빠의 가슴 절절한 대화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남편은 “너를 구할 수만 있다면 블랙홀이 대수냐”라며 딸을 끌어안고 세리머니를 했다. 부모가 돼 입어보면 더 잘 맞는 옷 같은 영화였다.
젊은 날엔 문정희 시인의 ‘겨울 사랑’이나 ‘비망록’에서 서성거렸다. 요즘은 ‘남편’이라는 시에 자주 머문다.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은/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그래도 저 남자가 없으면 내가 낳은 새끼들에 대한 애틋함을 누구와 같이 공감할지, 내 인생의 굽이굽이는 또 누구와 함께 기억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저 남자”가 우리 편을 구하러 블랙홀에 들어갈 유일한 남의 편이라니!
시절마다 손을 내밀어 주는 문장 몇 개가 있어 그런대로 정신을 차리고 살아간다. 혼자서는 반찬 뚜껑을 못 열어 반찬을 못 챙겨 먹는 남편과 실랑이를 벌이는 일상이 나름대로 귀하게 느껴지는 것도 내 손을 잡아주는 문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좋은 손길을 더 많이 구하려고 책과 신문을 읽고 영화를 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고마운 문장에 기대 결혼 생활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일을 하며 살아간다.
강보라 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