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상권 침체, 좋은 입지 경쟁력에 정비사업 확산
“공항시장에서 장사를 17년간 했어요. 2월 28일까지만 장사하고 나갈 거예요. 새벽 5시 30분에 문 열고 저녁 6시에 집에 가는 생활을 45년이나 했네요. 지금은 방 뺀 가게들도 다 10년 넘게 같이 장사하던 곳인데….”
서울 강서구 방화동 공항시장을 허물고 주상복합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조영철 기자
강서구에서 1970년에 문을 연 공항시장은 반세기 넘는 역사를 지닌 전통시장이지만, 지난해 12월부터 이주가 시작됐다. 이곳이 사라진 자리엔 15층 규모 아파트 3개 동과 오피스텔, 상가, 공공업무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비단 공항시장만의 일은 아니다. 현재 서울에서만 전통시장 27곳이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정비사업을 추진 중이다. 단순 계산으로도 자치구마다 하나 이상의 전통시장이 재편 수순에 들어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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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시장 초입엔 골목 너비만 한 ‘관계자 외 출입금지·철거대상’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길을 막고 있었다. 그 너머로는 이미 지어진 13층짜리 오피스텔이 눈에 들어왔다. 공항시장 주변부를 둘러싼 오피스텔만 해도 6채. 대부분 준공 10년 이내 신식 건물이다.
이곳에서 20년간 장사해온 그릇 가게 주인 박모 씨도 다음 달에 가게 문을 닫는다. 그는 전통시장의 전성기와 쇠퇴기,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의 등장을 모두 지켜봤다. 1980년대엔 시장 인도에 사람이 가득해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박 씨 역시 장사가 잘돼 경기 김포까지 배달을 가곤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삼남매를 모두 대학에 보낸 박 씨 나이는 어느덧 80대. “평생 지켜온 가게 문을 닫는 건 아쉽지만, 우리 아들딸들도 이젠 이마트에 가니 별 수 없다”며 웃었다.
시장을 찾은 손님들의 따뜻한 한 끼가 돼줬을 식당 문 앞에 출입 금지 테이프가 X 자로 붙어 있다. 조영철 기자
주상복합으로 바뀌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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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주민 이주가 시작된 공항시장에서 아직도 문을 연 곳은 골목마다 한두 곳에 불과하다. 조영철 기자
서울의 낡은 전통시장이 주상복합 등 주거시설로 바뀌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온라인 거래 확산으로 오프라인 상권이 침체되면서 시장 재정비 동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전통시장은 대체로 상권과 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에 자리 잡고 있어 개발 입지가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방화동 공항시장은 송정역(서울지하철 5호선)과 공항시장역(9호선)이 지나는 초역세권이다. 철거와 주상복합 착공을 앞둔 강남구 대치동 남서울종합시장도 대치역(3호선)과 도곡역(3호선·수인분당선)이 가까운 알짜 입지다.
정비 계획을 바꾼 시장도 있다. 마포구 연남동 동진시장은 당초 지상 8층 규모의 판매·업무시설을 계획했지만, 지상 11층 높이의 근린생활·관광숙박시설로 용도를 바꿀 예정이다. 연남동 일대는 관광 수요가 많고, 근처 대학생과 직장인의 주거 수요까지 고려하면 사업성이 더 높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폐업한 가게 창가에 주인 없는 한복이 진열돼 있다. 조영철 기자
1월 13일 오후 5시 공항시장역 앞에서 저녁 반찬을 사고 돌아가는 60대 여성을 만났다. 공항시장이 아예 문 닫으면 장을 보러 어디로 갈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옆에 방신시장 가볼까…”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가 돌아선 뒤편, 이미 폐업한 가게 창가에는 주인 없는 고운 한복이 진열돼 있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523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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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원 기자 yc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