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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 주5일제 혼란… “평일 물량 늘어 가족까지 동원 배달”

입력 | 2026-01-15 04:30:00

李정부 ‘근로단축’에 업계 속속 도입
현장 의견 수렴 등 준비 절차 미흡
“쉬는 날 생겨도 택배 물량 그대로… 평일 퇴근만 2,3시간 늦어지는 꼴”
정치권은 새벽배송 제한까지 논의… “대체 인력 확보 등 보완책 마련을”




경기 지역 택배기사 박모 씨(53)는 주 5일 근무제 시범 운영을 시작한 지난해 12월부터 주중에 이틀은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10시에 퇴근하고 있다. 택배 물량과 기사 수는 그대로인데 쉬는 날이 늘어 일감이 몰린 탓이다. 통상 화요일에 최대 550개의 택배를, 다른 요일엔 300개 이상을 처리해 왔는데 이제는 거의 매일 화요일만큼 일하고 있다.

박 씨는 “쉬는 날이 생겨도 물량은 그대로라 오히려 더 피곤하다”며 “대리점 기사 절반 정도는 아내 등 가족을 동원해 업무를 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변에는 주 5일제가 정착되면 택배 일을 그만두겠다는 기사들도 많다고 한다.

‘실근로시간 단축’을 내세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택배업계가 잇달아 주 5일제 도입에 나서고 있지만 현장은 준비가 안 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정치권이 택배업계 주 5일제 정착을 넘어 새벽배송 제한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대체 인력 확보 등 보완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 택배기사들 “주 5일 근무에 퇴근 시간만 늦어져”

14일 택배업계에 따르면 국내 1위 택배업체 CJ대한통운은 올해 상반기(1∼6월) 주 5일제를 전면 시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중형 이상 대리점을 대상으로 주 5일제를 시작했고, 올 들어선 20인 이상 대리점부터 순차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쿠팡과 컬리 등도 최근 배송기사 주 5일제 도입 가능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준비가 미흡한 상태로 주 5일제가 시작되면서 택배기사들의 어려움이 오히려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권의 택배 대리점 소장 김모 씨는 “배송 지역이 워낙 넓고 물량이 많아 주 5일제가 물리적으로 힘들다”며 “지금도 노조에 가입한 기사만 주 5일 근무를 하고 나머지 기사들이 주 6일을 일하며 물량을 소화한다”고 했다. 경기 지역의 또 다른 택배 대리점 소장 김모 씨는 “현장은 준비가 안 돼 있는데 본사는 알아서 하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주 5일제 도입에도 ‘주 7일 배송’이 뉴노멀로 자리 잡고 있는 데다 고정 택배 물량은 그대로여서 실제 근로시간 단축 효과는 미미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경기 남양주시의 택배기사 이모 씨(46)는 “지금 여건에서 주 5일제가 정착되면 퇴근 시간만 2, 3시간 늦어지는 꼴”이라며 “본사에 항의하겠다는 기사들이 꽤 있다”고 했다.

● “대체 인력 확보할 지원 방안 우선 돼야”

주 5일 근무를 보완할 대체 인력을 구하기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경기 안양시의 택배 대리점 소장 김모 씨(49)는 “하루 평균 200개 안팎의 물량이 확보돼야 대체 기사에게 최소한의 수입을 보장할 수 있는데 요즘 같은 상황에선 쉽지 않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 5일제 추진 의사를 밝힌 컬리 측은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실 질의에 “주 5일제 시행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아직 없다”고 답변했다.

여당이 주도하는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는 택배업계 주 5일제 정착에 이어 심야시간 배송 제한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회의에서는 택배기사 야간노동을 월 12회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주 5일제 도입 등이 실질적인 근로시간 단축으로 이어지려면 제도 보완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체 인력을 안정적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수입을 보장하거나 일당을 보전하는 등 지원 방안이 선행돼야 한다”며 “대리점 수수료 조정이나 인건비 보전 없이 주 5일제를 도입하면 현장에 부담만 전가되는 ‘선심성 제도’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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