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함-익숙함-편안함 공유 낯선 이방인도 품어주는 공간
박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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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뒷거리를 헤매다가 작은 우편함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는 걸 봤다.
“I have always imagined that Paradise will be a kind of library(천국이 있다면 아마 도서관 같은 곳일 것이다).”
파스텔 톤의 작고 예쁜 우편함에 이런 글귀가 써 있는 도시라니, 이건 무조건 합격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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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도서관은 여러모로 특별한 공간이다. 짐작건대, 이들에게 도서관은 끝없고 영원한 탐구의 영역, 우주처럼 무한한 지적 축적의 공간이 아니었을까. 지적 갈증과 호기심으로 가득한 그들이 꿈꾸는 천국 역시 그와 비슷한 어떤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다 보면 이와는 사뭇 다른 의미에서 도서관이 천국 같은 곳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러니까 도서관의 모든 게 실수로 지상에 내려온 천상의 것 같단 느낌을 줄 때가 있다. 몇 해 전 연고도 지인도 없던 미국의 한 도시에서 1년을 지냈는데, 그때 도서관이 그랬다. ‘속해 있다’는 느낌을 주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 도서관이었다.
언제 찾아도 높은 층고에 멋진 채광이 드는 창이 있었다. 마음대로 뽑아 볼 수 있는 잘 정리된 책장과 푹신한 의자, 넓은 테이블. 누구나 들어가서 편안하게 머물 수 있었고, 책뿐만 아니라 DVD, 보드게임도 무료로 빌려줬다. 공짜 영어 강습이나 학습 프로그램도 다양했는데, 심지어 일정 권수를 대출하면 햄버거 세트 쿠폰을 공짜로 주는 이벤트도 했다. 보통은 뭔가를 주면서 대가를 요구하는데, 도서관은 항상 뭔가를 주면서 뭔가를 ‘더 주겠다’고 했다.
이때 경험 덕분에 어느 지역에 여행을 가서도 공공도서관이 보이면 지나치지 못하는 버릇이 생겼다. 낯선 여행지의 도서관에 들르면, 지역이나 분위기는 달라도 모든 도서관은 공통 코드―안전함, 익숙함, 편안함, 열림을 공유하는 한 조직의 지부 같단 인상을 받게 된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찾아가도 잡지와 신문, 책이 꽂힌 서가가 있고 카펫과 안락의자, 아이들용 작은 책상과 장난감 몇 개가 놓여 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는 사람들이 있다. 문을 열고 책을 뽑아 드는 순간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고, 책장을 펼치는 순간 ‘연결됐다’는 안도감이 든다. 그곳이 어디든 집 같고, 고향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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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현을 빌리자면 도서관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곳이 시원을 호명하는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산함을 가라앉히고 돌아온 집 같은 곳. 덜그럭대던 것의 아귀가 맞춰지는 곳. 곤두섰던 마음을 내려놓고 방심해도 되는 곳. 꿈꾸던 수많은 가능성의 답이 사실은 이미 있었던 곳. 천국이 있다면, 정말로 도서관 같은 곳일 것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