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이고 특별전 맛보기] 〈6〉 클로드 모네 ‘샤이의 건초더미’ 평생 작업실 보관하다 아들에 건네 후대에 청년시절 사생작업 보여줘
클로드 모네 ‘샤이의 건초더미’(1875년). 샌디에이고 미술관 제공 ⓒ The San Diego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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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사업을 물려받으라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향을 떠나 파리로 온 클로드 모네. ‘화가로 살겠다’는 강한 의지로 불탔던 20대 청년은 화실에서 만난 친구 오귀스트 르누아르, 알프레드 시슬리와 함께 이젤과 화구를 들고 퐁텐블로 숲으로 향한다. 당시는 많은 학생이 화실에서 옛날 작품이나 모델을 보며 누드화, 역사화를 그리던 때. 그럼에도 세 청년이 자연으로 향한 건 “숲으로 나가서 빛을 잡아라”는 스승 샤를 글레르의 조언 덕이었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의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에 출품된 ‘샤이의 건초더미’는 모네가 스물세 살에 그린 풍경화다. 배경은 퐁텐블로 숲 근처 샤이의 들판. 그런데 모네 하면 흔히 떠오르는 짧고 빠른 붓 터치나, 물체의 표면에 반사된 빛의 효과가 이 그림에선 보이지 않는다. 모네가 아직 인상주의 화풍을 만들기 전인 초기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때 모네는 자연으로 나아가 풍경 그리기에 몰두했던 바르비종 화가들의 영향을 받아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었다. 이 그림을 그리던 해 살롱전에 작품 두 점이 받아들여지는 ‘약간의 성과’는 있었지만, 그는 이제 막 시작하는 화가였다. 그리고 2년 뒤, 살롱전에 출품한 작품이 거부당한 걸 계기로 모네는 완전히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인상파 스타일의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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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인상파 화가가 된 모네는 이때에는 건초더미를 캔버스 전면으로 가져와 커다랗게 그린다. 그리고 태양 빛의 기울기에 따라 달라지는 건초더미의 색을 수십 점의 캔버스에 다채롭게 담아 한자리에 함께 전시한다. 파리 갤러리에 전시된 ‘건초더미’ 연작은 미국 애호가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성공을 거뒀다.
모네는 자신이 20대에 그린 ‘샤이의 건초더미’를 평생 작업실에 보관했으며, 세상을 떠난 뒤엔 아들에게 물려줬다고 한다. 샌디에이고 미술관은 모네가 청년 시절 열정을 담았던 야외 사생 작업을 돌아보고, 후대 화가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이 작품을 보관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