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 정책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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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30년 지기 초등학교 동창이 암 투병 중인 어머니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힘든 결정을 내렸다. 가족들은 “콧줄 꽂고 누워만 있다가 눈감기 싫다”는 어머니 뜻을 존중했다.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등 연명의료 수단 대신 당신이 생전에 꼭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를 지우며 임종까지 석 달을 보냈다. 거동이 가능할 때 가족 여행을 다녀오고, 친구들과 마지막 식사를 함께하며 ‘생전 장례식’을 치렀다. 마지막 3주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통증을 줄이고, 심적 안정을 찾는 데 집중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치렀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임종은 흔치 않다. 2018년 연명의료 결정 제도 시행 후 사전연명의료 의향서 작성자가 300만 명을 넘었지만, 상당수는 연명의료를 한다. 2023년 사망자 중 연명의료를 미루거나 안 한 비율은 16.7%. 같은 해 정부 노인 실태 조사에서 84%가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밝힌 것과 차이가 컸다. 연명의료 중단을 불효라고 여기는 자녀의 반대, 관련 인프라 부재 등이 겹친 결과다.
16일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연명의료 제도 개선’을 언급한 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보험료 경감 등 연명의료 중단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지시엔 동의하기 어렵다. 경제적 유인을 제공해 연명의료 중단을 유도하는 건 ‘존엄한 죽음’을 보장한다는 제도 취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현장에선 “저소득층 환자와 보호자에겐 연명의료 인센티브 도입이 ‘현대판 고려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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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비용이 본질이 돼선 안 된다. 임종기 삶의 질을 높이는 논의가 우선 돼야 한다. 한국에서 대부분 생의 마지막은 존엄한 죽음과 거리가 멀다. 임종에 가까울수록 의료 역할이 줄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과도한 수액 공급으로 폐에 물이 차고 팔다리가 부은 채 임종을 맞는 경우가 흔하다. 노인 10명 중 7명은 자택 임종을 희망하지만, 실제론 73%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 중 절반(36%)은 요양병원에서 임종을 맞는다. 호스피스나 재택 돌봄 기반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죽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데 인색하다 보니 임종기 의료와 돌봄에 당사자 뜻을 반영하기도 어렵다.
죽음의 질이 높은 국가들은 다르다. 미국의 사전 의료 의향서인 ‘파이브 위시스(five wishes)’는 이런 것까지 고민하나 싶을 만큼 구체적이다. 12쪽 분량의 의향서엔 연명의료 여부, 임종 장소뿐 아니라 추도식에서 틀 음악도 적는다. 연명치료 대신 마사지, 목욕, 손톱 정리 등 자신이 원하는 돌봄을 요청할 수 있다. 단 하루라도 존엄한 삶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다.
한국의 ‘품위 있는 죽음’ 논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연명의료 중단 인센티브보다 시급한 게 호스피스-재택의료 기반 확충과 구체적인 사전돌봄계획(ACP) 작성 제도화다. 생의 말기 돌봄과 죽음을 사회가 얼마나 책임지느냐가, 곧 국가의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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