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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가 원뿔 모양인 이유[서광원의 자연과 삶]〈116〉

입력 | 2025-12-23 23:06:00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저마다의 모양을 가진다. 바위와 나무는 물론이고 흐르는 강도 그렇다. 무생물의 모양은 대체로 생성 당시의 물리적 조건과 그 위에 쌓인 시간이 결정한다. 반면 생물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 속에서 자기만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같은 나무라도 활엽수와 침엽수의 수관(樹冠)이 서로 다른 이유다.

활엽수와 침엽수는 전체적으로는 삼각형 외형을 띠지만, 그 형태는 크게 다르다. 참나무와 단풍나무 같은 활엽수는 밑변이 넓은 반달형인 반면, 소나무와 잣나무 등 침엽수는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원뿔형이다. 살아 있는 것의 모양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들의 모양도 마찬가지다.

침엽수보다 나중에 등장한 활엽수는 동물에 비유하자면 기동성을 갖추는 쪽을 택해 생존력을 높였다. 침엽수가 사계절의 변화를 꿋꿋하고 묵묵하게 견디는 존재라면, 참나무 같은 활엽수는 살기 좋은 계절엔 마음껏 자라다가 노력 대비 성과가 별로 없는 겨울엔 활동을 멈춘다. 상황이 좋을 땐 전진하고 나쁠 땐 후퇴하는 방식이다.

이런 기동성을 확보하지 못한 침엽수는 어떻게든 겨울을 보내야 하니 잎의 넓이를 줄여 바늘처럼 만들었다. 침엽수(針葉樹)라는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 말 그대로 ‘바늘 같은 잎’을 가진 나무라는 뜻이다. 여름에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겨울에 얼어 죽지 않는 게 우선 아닌가.

수관이 위로 좁아지는 원뿔형인 것도 겨울, 특히 폭설에 대비한 선택이다. 겨울철 넓은 마당이나 운동장에 쌓인 눈을 치워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흩날리는 눈과 쌓인 눈은 존재감이 전혀 다르다. 가끔 머리를 식히러 찾는 강릉 바닷가에 눈이 많이 내리는 날, 소나무 숲에 들어가 보면 말 그대로 ‘비상사태’다. 바닷가에 내리는 눈은 수분이 많아 튼튼해 보이던 가지들이 어느 순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우지끈 부러진다. 눈이 많이 오면 서울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를 때 강릉 시민들은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이곳의 소나무들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이런 일을 피하려다 보니 침엽수는 원뿔 모양이 됐다. 반면 활엽수는 가능한 많은 햇빛을 받기 위해 가지를 펼쳤고, 그 결과 밑변이 넓은 삼각형이 됐다. 살아가는 방식이 모양을 만든 것이다.

이렇듯 소나무에게 겨울은 지난 1년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묻는 일종의 평가 기간이다. 봄에서 가을까지 소나무는 부지런해야 한다. 게으름을 피우다 옆 나무들에게 뒤처지면 곧바로 그늘에 묻힌다. 여느 나무보다 햇빛을 많이 받아야 하는 소나무에게 이는 보통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오로지 성장에만 매달려 가지를 키웠다가는 수북이 쌓인 눈에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만다.

소나무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겨울은 단지 추운 계절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적응력을 갖췄는지를 자연이 점검하는 시간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액셀을 마음껏 밟을 수 있다. 다만 그 속도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살아가는 일도 마찬가지다. 잘나간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그 성장이 언젠가 닥쳐올 ‘겨울’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소나무들이 푸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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