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에 연중 물 있는 ‘분화구 습지’ 팔색조-양서류 등 멸종위기종 서식 확인된 조류 중 철새 비율 45.3% 환경교육-생태관광 자원으로 활용
제주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물찻오름 정상에 형성된 분화구 습지. 제주도는 이 일대를 도 지정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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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가 러시아에서 한 번 뜨면요, 15일 정도를 날아요. 땅도 한 번 안 밟고 먹을 것도 안 먹고…. 철새 도래지라는 데가 그런 철새들이 들렀다가 밥도 먹고 물도 마시고 하는 덴데, 그 도래지를 개발하면 걔들이 날아왔다가 떼죽음을 당해요. 한 종류의 새가 멸종하는 겁니다.”
2016년 개봉한 영화 ‘검사외전’에 나오는 대사다. 비록 극 중에서 조직폭력배가 환경운동가로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외운 말이지만, 습지를 보존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하다.
습지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은 난개발을 먼저 겪은 유럽에서 시작됐다. 산업화 과정에서 유럽 전역의 습지가 광범위하게 파괴되며 조류 개체 수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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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화산섬이라는 특성상 내륙습지는 물론이고 총 254km에 이르는 연안습지가 공존해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된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제주도는 국제기구나 국가 관리 체계와는 별도로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습지를 관리하기로 했다.
23일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있는 물찻오름(3582㎡)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다. 물찻오름은 사려니숲길 중간에 위치한 오름으로, 산 정상 분화구에 연중 물이 고여 있는 ‘분화구 습지’다. 이곳에는 다양한 어류와 파충류, 양서류는 물론이고 매와 팔색조, 긴꼬리딱새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이 서식해 생태적 가치가 매우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찻오름에서 확인된 조류 가운데 철새의 비율은 45.3%에 달한다.
제주도가 자체적으로 습지보호지역을 지정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습지보전법에 따르면 시도지사도 관할 구역 내 습지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
도 지정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면 수질과 식생, 수문 등 생태계 기능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탐방·해설 프로그램을 통해 환경교육과 생태관광 자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제주도는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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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범 기자 seb1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