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바꾸고 있는 인간관계 인간-AI 準사회적 관계가 일상으로… 언어에 이어 AI가 인지구조 새로 짜 감정영역까지 들어와 애착 형성돼… 기존 인간 네트워크 약화시킬 우려 인간 확장 도구 아닌 대체할 위험도… AI 기술 확보 더해 정체성 논의해야
맹성현 태재대 부총장·KAIST 명예교수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말한 ‘인지혁명’은 약 7만 년 전의 일이다. 인류가 언어를 통해 추상적 개념을 공유하고, 협력을 통해 문명을 건설하게 된 계기가 된 인지혁명은 뇌의 확장, 언어의 발생, 사회의 형성이라는 과정을 거쳤다. 필자는 생성형 AI로 시작된 현재의 변화를 ‘제2의 인지혁명’ 수준으로 본다. 인류의 인지 체계가 AI에 의해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뇌는 포화 상태다. 인터넷 포털, 전자상거래, 소셜미디어 등이 만들어내는 정보와 사물인터넷(IoT)이 만들어내는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지만, 인간의 뇌 용량은 7만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초기화된 뇌’를 가지고 태어나 그 많은 지식을 살면서 습득해야 한다. 따라서 인류가 집합적으로 축적한 계통발생적 지식과 개인이 평생에 걸쳐 습득할 수 있는 개체발생적 지식의 간극은 점점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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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는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등장하는 필연적인 현상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AI의 발전은 극히 혁명적이다. 산업혁명이 인간의 육체노동을 기계화하면서 많은 블루칼라 일자리가 사라졌던 것처럼 현재의 AI는 정신노동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혁명적인 것은 인간과 인간의 소통이 인간과 AI의 상호작용으로 대체되면서 인류사에 큰 전환점이 오고 있다는 점이다.
무소불위의 지능을 갖춘 AI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면 기존 인간관계에는 큰 균열이 생길 수 있다. 지식의 보유·전달·활용으로 맺어진 사제지간의 관계, 업무 협력을 위해 엮인 동료 및 선후배 관계, 가족 관계 등이 와해될 수 있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똘똘한 AI 에이전트 하나만 데리고 있다면 많은 일과 업무가 해결될 수 있으니, 굳이 지금과 같은 휴먼 네트워크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인간관계의 변화는 크고 작은 사회 구조의 변형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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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대전환으로 귀착될 ‘제2 인지혁명’이 시작되고 있는 이 시점에 각국 정부는 AI 반도체 확보와 대규모언어모델(LLM) 개발 등에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이 혁명이 인간의 정체성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진지한 논의가 턱없이 부족하다. ‘소버린 AI’(국가 주권 AI)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AI 시대의 인간 주권’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우리에게는 AI라는 새 동반자가 주어졌다. 이것을 인간 확장의 수단으로 삼을지, 인간 대체의 위협으로 만들지는 우리 세대의 선택에 달려 있다.
맹성현 태재대 부총장·KAIST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