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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수비수 압박 뚫고 골 넣는 맛 정말 짜릿해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입력 | 2025-12-06 12:00:00


11월 19일 저녁 서울 송파구 송내유수지축구장 풋살장. 권진희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홍보실 대리(28)는 남성들과 5대5로 펼친 풋살 경기에서 쏜살같이 상대 문전을 파고들며 골을 터뜨렸다. 빠른 스피드와 재치 있는 드리블, 감각적인 슈팅을 날리며 즐겁게 공을 찼다.

권진희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홍보실 대리가 서울 송파구 송내유수지축구장 풋살장에서 남성들과 플레이하며 슈팅을 날리고 있다. 어릴 때 주말 조기축구 나가는 아빠를 따라다니며 축구를 접한 그는 서울시립대 여자축구부 창단 멤버로 활약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축구로 건강을 다지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권 대리는 어렸을 때부터 주말 조기축구에 나가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축구를 접했다. 운동을 좋아했다. 검도를 5년 하며 공인 2단증도 땄다. 엘리트 선수는 아니었지만, 초교에서 고교 때까지 학교 대표로 육상대회 100m와 400m 계주에 출전했다. 축구부가 없는 학교에 다니는 바람에 축구선수가 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여자축구팀 창단 멤버로 활약했고, 사회생활 하면서도 평일 야간이나 주말에 공을 차며 건강을 다지고 있다.

“드넓은 잔디 구장에서 공을 차며 놀아주던 아버지의 영향인지 축구는 즐거운 놀이 그 자체였습니다. 축구를 잘해보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죠.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운동장에 골대가 없어 저에겐 충격이었죠. 어린 시절 운동을 즐기던 기억 때문에 서울시립대 스포츠과학과에 입학했어요. 그런데 운명처럼 제가 학교 여자축구부 창단 멤버가 된 것입니다. 꿈만 같았죠.”

2016년 서울시립대 여자축구부 창단 당시 모습. 권진희 대리 제공

2016년 창단된 서울시립대 여자축구팀의 명칭은 WFC-BETA로 동아리팀이다. 코치가 스포츠과학과 남자 선후배들이었지만, 볼 컨트롤부터 패스, 킥, 슈팅, 세트피스 연습 등 축구를 처음으로 제대로 배웠다. 주 2회 정기 훈련, 방학 때 지방 전지훈련, 그리고 개인 훈련까지 “이를 악물고 했다”고 했다. 하지만 대학여자축구동아리계에서는 최하위를 면치 못했다. 그런데 꼴찌가 기회로 다가오기도 했다.

“2017년 한 포털에서 우리 팀을 주제로 ‘꽃길싸커20’이라는 프로그램을 찍었죠. 여자 생활체육 인식 제고와 여자 프로축구의 관심을 높이기 위한 웹예능이었어요. 2000년 프로축구 K리그 신인왕 출신 양현정 감독이 꼴찌팀을 맡아 조금씩 성장하는 스토리였어요. 당시 누적 조회수가 15만을 넘겼죠. 그 프로그램 때문에 우리 팀이 알려져 응원받게 됐죠. 계속되는 패배와 부상 등 좌절 속에서도 공에 집중하며 축구 열정을 불태웠던 시간이었습니다.”

권진희 대리가 서울 송파구 송내유수지축구장 풋살장에서 활짝 웃으며 드리블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당시 WFC-BETA를 돕기 위해 많은 사람이 나셨다. 양현정 감독을 비롯해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 서동명 골키퍼 코치, 화천KSPO여자축구단 강유미, 황보람, 정보람, 올림픽대표팀 출신 김태민 코치, 그리고 홍콩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김봉진(킷치SC)과 지경훈(HK 레인저스 FC) 등 쟁쟁한 객원 코치들이 참여했다.

이런 손길에 힘입어 WFC-BETA도 크게 성장했다. 촬영 기간 중 참가한 아마추어 여자축구동아리 서울권 대회에서 승부차기 끝에 조별리그 2경기를 모두 승리로 장식했다. 2017년 11월 4∼5일 열린 인천대총장배 아마추어축구 클럽대회에서는 3위에 오르기도 했다.

권 대리는 유아 체육에 관심이 있어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는 축구 유소년스포츠지도사 자격증도 획득했다. 스페셜올림픽코리아에서 일하다 KADA에 둥지를 튼 그는 “현재 스포츠 행정을 하고 있지만 기회가 있으면 어린아이들에게 축구를 지도하고 싶다”고 했다.

권진희 대리가 딴 유소년스포츠지도사 자격증(왼쪽)과 검도 2단증. 권진희 대리 제공

권 대리는 KADA에 입사한 뒤엔 일에 집중하기 위해 잠시 클럽팀 활동을 접었다. 대신 평일 야간에는 KADA에서, 주말에는 동네에서 남성들과 함께 풋살을 하고 있다. 그는 “여성 회원이 적다 보니 남성들과 함께 즐기고 있다. 열심히 공을 쫓다 보면 온갖 스트레스가 다 날아간다”고 했다.

권 대리의 주 포지션이 최전방 공격수다. “수비수들의 압박을 이겨내고 골을 터뜨릴 때의 짜릿함은 그 어떤 기쁨보다 크다”고 했다. 축구하며 많이 다치기도 했다. 2018년 서울권 대학 축구 클럽대회 준결승전에서 상대 수비의 거센 몸싸움에 밀려 오른쪽 정강이뼈가 골절됐다. 2022년 남자들과 함께 뛴 풋살 경기 땐 오른쪽 무릎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됐다. 벌써 수술대에 2번이나 올랐다. 그래도 축구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오른쪽 정강이뼈 골절로 수술까지 한 권진희 대리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 한국-멕시코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서울 광화문 거리 응원에 나서고 있다. 권진희 대리 제공

“정강이뼈가 부러졌을 때 2018 러시아 월드컵이 열렸어요. 2002년 한일 월드컵 ‘붉은 악마’의 길거리 응원 열기를 이어받아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응원전이 펼쳐졌죠. 전 한국과 멕시코의 조별리그 경기를 휠체어 타고 나가 응원했어요. 1-2로 졌지만 뜨겁게 ‘한국 승리’를 외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클럽 활동은 잠시 멈췄지만 때때로 그의 축구 본능을 발휘할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선수와 구장을 연결해 주는 ‘플랩풋볼’을 통해 틈날 때마다 참여 쿼터가 남아있는 곳을 찾아 경기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에도 플랩풋볼로 연결돼 경기에 나갔다. 그날 내 플레이가 좋았는지 같이 뛴 플레이어들이 본인들 팀에서 함께 하기를 원했다”고 했다. 하지만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도핑방지위원회(WADA) 총회(12월 1~5일)를 준비하느라 잠시 참여를 미뤄놓았다.

권진희 대리가 서울 송파구 송내유수지축구장 풋살장에서 공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축구할 기회는 줄었지만, 언제든 경기에 뛸 수 있는 몸 상태는 만들고 있다. 전신의 조화로운 발달을 위해 필라테스를 한다. 5km 이상 달리며 지구력도 키운다. 달리기할 땐 불가리안 스쾃, 스쾃 점프, 한 발 뛰기, 런지, 피칭 등 보강 운동도 하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골 때리는 그녀들(골때녀)’이 여자축구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여자들이 축구하는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골때녀가 그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엔 축구한다고 하면 ‘여자가 무슨 축구?’로 보던 시선이 이젠 사라졌어요. 골때녀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축구를 즐기고 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대구 FC의 브라질 특급 세징야를 꼽았다. “손흥민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국내파 선수들도 좋아하지만, 국내에서 활동하는 선수 중에서는 대구 FC의 세징야를 가장 뛰어난 선수로 보고 있습니다. 빠른 스피드에 드리블, 중거리 슛, 크로스 등 전천후 능력을 과시하며 펼치는 날카로운 공격력이 예술입니다. 무엇보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이국땅에서 10년 가까이 한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는 점에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저도 일과 축구에서 꾸준함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권진희 대리(앞줄 가운데)가 서울 송파구 송내유수지축구장 풋살장에서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혼성팀 풋살 경기를 마친 뒤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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