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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개딸과 태극기 부대에 포획된 정당

입력 | 2025-12-03 23:21:00

美 공화당에서 대의원의 게이트키핑 사라지자
트럼프 같은 정치적 부적격자가 대통령 돼
우리나라도 양당 모두에서 대의원 힘 약화
양당이 타협 없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이유다



송평인 칼럼니스트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 등이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보면 미국 공화당에서는 민주당과는 달리 정치 부적격자의 대선 후보 선출을 막을 수 있는 대의원(delegate)의 게이트키핑(gatekeeping) 기능이 사라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같은 대통령이 나올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72년은 미국 정당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였던 모양이다. 프라이머리(primary)가 실시된 지는 오래됐지만 프라이머리 결과와 관련 없이 후보가 선출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일이 민주적이지 않다고 해서 정치 개혁 위원회가 만들어져 프라이머리의 구속력을 권고한 것이 그때부터다. 그럼에도 민주당에서는 주지사, 상원의원, 대도시 시장 출신으로 구성된 슈퍼대의원(superdelegate)의 영향력이 사라지지 않았다. 반면 공화당은 프라이머리를 통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단순하고 순진하게 밀고 나갔는데 그것이 뜻밖에 뉴트 깅리치로부터 시작해 티파티 운동을 거쳐 트럼프에 이르는 극우의 길로 이어졌다는 것이 저자들의 분석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의원의 표와 권리당원의 표의 등가성을 확립하겠다고 해 민주당이 시끄럽다. 민주당에서 대의원 표 1표의 가치가 권리당원 표 60표의 가치와 맞먹는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일견 불합리하게 보이겠지만 정당 내에서는 당과 고락을 같이하면서 당의 전통을 지켜온 사람들일수록 갓 당원이 된 사람들보다 의사결정에 더 큰 책임감과 함께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는 자연스러운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대개 진보 정당일수록 진성 당원의 영향력이 있다. 국민의힘은 대의원의 표가 민주당만큼 큰 가치를 지녔던 적은 없다. 그래도 예전에는 책임당원(민주당의 권리당원에 해당)의 표에 비해 서너 배의 가치를 지녔다. 대의원 표의 우월적 가치를 먼저 없앤 쪽은 국민의힘이다. 그러자 매달 1000원을 내는 당원을 누가 더 많이 끌어모을 수 있느냐가 전당대회 승리의 관건이 됐다. 그 기회를 이용해 젊은 남성 지지자들의 당원 가입 운동을 벌여 대표가 된 경우가 이준석이다. 그것은 진전인 듯 보였으나 실은 퇴보의 시작이었다. 이준석이 뚫은 루트를 태극기 부대가 따라가면서 김기현 대표 당선 때부터 이 당을 좌지우지하는 세력은 태극기 부대와 전광훈 무리가 되고 말았다.

민주당의 권리당원 역시 국민의힘 책임당원과 마찬가지로 1000원짜리다. 우리나라 정당은 당비를 모아 운영되는 게 아니라 국고보조금으로 운영된다. 어차피 나랏돈으로 정치를 하는 마당에 당에 헌신하고 기여하는 만큼 권한과 책임을 갖는다는 원칙 따위는 인정할 수 없다며 표의 등가성을 강력히 주장하고 나온 게 개딸들이고 혹시나 ‘이재명 어게인’을 바라면서 개딸들을 받들고 있는 게 정 대표일 뿐이다.

민주당이 재판중지법을 발의하자 대통령실은 자제를 요구했다. 재판중지법이 없어도 법원은 임기 중의 대통령을 재판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뻔한 것에 자제 요구를 들이대며 생색을 낸 대통령실이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사법부의 독립을 해치는 법안들에는 침묵하고 있다. 기각이 되긴 했지만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구속 심사를 앞두고는 기어이 이 정당을 해산시키고 말겠다는 듯 사법부를 겁박했다. 빈총 계엄일지라도 반국가적인 것은 확실하지만 반인륜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것을 600만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의 범죄에 비유하며 살아있는 한 끝까지 처벌하겠다는 식의 다짐은 결연하다기보다는 우스꽝스러웠다.

사법부를 붕괴시킬 위헌적 법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바로 개딸들이다. 이 대통령도 정 대표도 ‘이재명네 마을’에서 와글거리는 개딸을 보고 정치하고 있다. 그러니 둘의 뜻이 다를 수가 없다. 둘은 개딸이라는 끈으로 묶인 이인삼각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의힘은 계엄 1년을 맞아 옷을 찢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사과해도 부족할 판인데도 장동혁 대표는 윤석열과의 단절 선언 요구에 “끊을 수 있는 관계는 없다”는 선답(禪答)을 했다. 여전히 부정선거론에 빠져 윤 어게인을 외치고 있는 태극기 부대와 전광훈 무리의 눈치를 보기 때문일 것이다. 정당이 패거리에 장악되고 점점 더 극단적으로 치닫는 흐름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막을 수는 있는 것인가. 대의원도 지구당도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되돌아가 다시 시작해 보는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송평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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